"유로존 경기 여전히 하락국면"…기준금리까지 손댄 드라기

입력 2016-03-11 00:04
ECB, 사상 첫 '기준금리 0%' 깜짝카드

예금금리 0.1%P 내려 -0.4%…월 200억유로 추가 양적완화
일반 회사채까지 사들이기로

올 성장률 전망치 1.4%로 낮춰


[ 박해영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이 10일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추가로 낮추고 양적 완화 규모를 확대하는 등 ‘초강수’를 내놓은 것은 지지부진한 경기 흐름과 물가 하락 위험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절박함에 따른 것이다. 특히 ECB가 국채 외에 비은행 기업 회사채까지 매입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경기 부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시장에 보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마이너스 예금금리의 장기화로 시중은행의 경영난이 가중되는 등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비은행권 회사채까지 매입

ECB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로 낮추며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기존 연 -0.3%에서 연 -0.4%로 0.1%포인트 내렸다.

ECB는 예금금리를 2014년 6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인 연 -0.1%로 낮췄으며, 같은 해 9월 -0.2%, 지난해 12월 -0.3%로 잇달아 인하한 데 이어 이날 네 번째로 마이너스 금리를 결정했다.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양적 완화 규모도 월 600억유로에서 800억유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ECB가 -0.4%까지 예금금리를 낮추고 자산매입액을 늘리는 이유는 경기 둔화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 0.6%였던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 0.4%로 떨어진 데 이어 3, 4분기 연속 0.3%에 머물렀다. 올해 1월 0.3%를 기록한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0.2%로 급락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키웠다. ECB는 이날 올해 유로존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0%에서 0.1%로 대폭 낮췄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1.7%에서 1.4%로 하향조정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기는 여전히 하락국면에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추가적인 금리인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ECB는 오는 6월 종료되는 4년 만기 목표물 장기대출 프로그램도 연장하기로 했다. ECB는 비은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투자등급 회사채로 한정하긴 했지만 국채나 지방채보다 위험이 큰 만큼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유럽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마이너스 금리 장기화로 부작용 우려

ECB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부양책을 내놨지만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극약 처방’에 가까운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당초 목표한 경기 활성화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로존 은행권의 수익성 악화는 금융시장에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은행연합회가 4월 중순 마이너스 금리의 악영향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할 예정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스위스 UBS의 세르지오 에르모티 최고경영자(CEO)는 “극도로 낮은 금리 때문에 은행들이 고객 예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지나치게 위험한 대출을 늘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에르모티 CEO는 블룸버그TV에 출연, “은행들이 이윤을 창출하려고 대출을 확대하기 때문에 부동산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리스크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에르스테은행의 안드레이스 트라이츨 CEO도 “추가 금리인하가 금융 거품을 유발하고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예금자를 불리하게 해 사회적 격차를 조성한다”고 FT에 말했다. 그는 “ECB가 극도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수년간 펼쳤지만 한계에 도달했다”며 “금리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임금상승률이 낮은 시기에 이자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 지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통화 완화 정책에 대해 “소비를 유도하기보다 집에 현금을 쌓아두거나 (은행에) 초저금리로 돈을 맡겨두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ECB가 금리를 0.1%포인트 내리면 유로존 은행들의 수익은 5%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위험한 실험”이라며 “은행 수익을 해치고 유로존의 국경 간 대출이나 은행의 자금 조달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