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왜 하는 거지?

입력 2016-03-07 07:00

소수당을 위한 합법적 방해책?

최근 언론에 ‘필리버스터(filibuster)’ 소식이 많았다. 국회에서 들려온 필리버스터 뉴스는 새삼 공부거리를 제공했다. 필리버스터 신기록, 필리버스터 악용, 필리버스터 효과와 부작용 등. 찬반 논란도 심했다. 국회 일정을 방해한다, 필리버스터로 선거운동을 한다, 정당한 권리다 아니다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필리버스터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필리버스터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의회에서 소수파 의원들이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 또 다른 자료를 보면, 합법적 의사 진행방해나 무제한 토론이라고도 설명돼 있다. 종합해 보면 의회에서 특정 안건에 대해 의원이 장시간 동안의 연설로 안건 통과를 막거나 재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행하는 정치적 의사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는 여러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이 이 제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 등 정치적으로 후진국이거나 독재국가에선 있을 수 없다. 어원을 살펴보자. 스페인어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바로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다. 약탈자, 해적선을 의미한다. 1850년대 초 본국의 이익에 반해 중남미에서 폭동과 혁명을 선동한 해적들이 필리부스테로였다. 국익을 해치는 방해자라는 이미지가 의회진행을 방해하는 이미지와 겹치면서 두루 쓰이기 시작했다.

1854년 미국에서 처음 쓰여

이런 의미가 정치적으로 처음 쓰인 곳은 1854년 미국이었다.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상정됐는데 이를 막으려는 의원들이 있었다. 반대의원들이 법안을 막는 방법으로 의사진행 발언을 장시간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토론이라는 형식을 빌리는 방해는 민주적이면서도 신사적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선보였다.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장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해 화제를 모았다. 필리버스터는 우리나라에서 1973년 폐기됐다가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에 이것이 포함돼 통과되면서 부활했다. 지난 2월 23일 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정부와 여당이 마련한 ‘테러방지법’에 대해 5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47년 만에 다시 부상했다.

미국에서도 장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이 있다. 1957년 사우캐롤라이나 주상원인 스트롬 서먼드는 24시간 18분 동안 발언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에 반대한 그는 미국 각 주의 선거법 조문을 다 읽고,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고별연설문 전체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의사진행방해 발언을 쏟아냈다. 최근에도 있었다. 2013년 9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법안(일명 오바마 캐어)을 막기 위해 21시간 19분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그는 화장실을 안 가고 21시간여 동안 읽었다니 지독하다.

미국에서는 아무 것이나 발언하면서 시간을 끌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토론주제와 관련이 없는 내용을 말할 수는 없다. 국회법 102조에 “모든 발언은 의제 외이거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에 반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용 얼굴 알리기로 악용 비판도

현행 국회법 제106조 2는 ‘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이라는 항목으로 필리버스터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필리버스터를 할 수는 없다. 본회의에 올라온 안건을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의장은 요구서를 확인한 뒤 허용해야 한다. 토론 회수는 1인당 1회에 한한다. 여러 의원이 릴레이식으로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수 있다. 본회의는 무제한 토론종결을 요구자가 선포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필리버스터는 토론자가 없는 등의 이유로 종결된다. 이것이 끝나면 해당 안건은 무기명 표결에 부쳐진다.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태러방지법은 선거구획정안, 북한인권법 등과 함께 처리된다.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테러방지법의 내용은 대한변호사협회도 “인권을 충분히 감안해 만들어졌다”고 평가할 만큼 무리한 법안이 아닌데도 야당이 요란을 떨었다는 지적이 많다. 또 야당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최장기록을 세우려 했고, 총선을 앞두고 얼굴을 알리기 위해, 공천을 받기 위해 충성표시용으로 필리버스터를 악용했다는 비판도 많다. 야당도 필리버스터가 길어질수록 지지여론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 앞에 중단을 결정했다는 평도 있다. 필리버스터 제도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방증이다.

■ 선거구 조정...게리맨더링은 또 뭐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구가 최근 조정됐다. 지역구 의석 수가 예전의 246석에서 253석으로 7석이 늘었다. 여당과 야당이 합의했다. 선거구는 도시팽창이나 축소로 인한 인구변화가 있을 경우 조정된다. ‘4·13 총선’을 앞두고 6개 선거구가 신설되고 9개 선거구가 통폐합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기 지역 의석수가 52석에서 60석으로 8석 증가했다. 농촌 지역구는 축소됐다. 줄어든 지역의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선거구 조정이 이뤄지자 정치권에서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말이 나왔다. 게리맨더링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마음대로 선거구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스주의 게리(Elbridge Gerry) 지사 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게리는 자신의 당인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구분하였는데, 그 모양이 샐러맨더 (salamander:도롱뇽)와 같아 상대편 당에서 게리의 이름을 붙여 게리맨더링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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