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백의종군'…현대상선 고강도 구조조정 속도 낸다

입력 2016-03-04 02:14
현 회장, 등기이사 사퇴

7대1 감자 통해 자본잠식 벗고 상장폐지 모면
유조선사업부 매각 추진…용선료 할인 협상도
내달 사채권자 동의 여부가 회생 갈림길될 듯


[ 도병욱/박동휘 기자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기로 한 것은 경영권 유지에 연연하지 않고 현대상선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상선의 감자 결정으로 현 회장은 사실상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선제적으로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정은 회장, 백의종군 선언

현대상선은 3일 이사회를 열고 현 회장 등기이사 사임 및 감자안을 오는 18일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결정했다. 현 회장과 김명철 상무가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고 김정범 전무와 김충현 상무를 신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다. 아울러 7 대 1 감자도 결정했다. 액면가 5000원인 보통주 및 우선주 7주를 1주로 병합하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자본잠식률 50% 이상 상태가 2년 연속 발생하면 상장폐지 요건이 되기에 이를 선제 대응하고자 주식 병합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기준 비지배 지분을 제외한 자본총계를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이 36.8%로 50% 이상 자본잠식 상태다.

감자가 이뤄지면 현대상선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상선의 1대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지분율 19.54%)이고,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주주는 현 회장(지분율 8.7%)이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감자와 채권단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최대주주 지위를 채권단에 내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현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용퇴를 결정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 회장이 이사회 구성원으로 남아 있으면 현대상선이 진행해야 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런 결정의 배경이 됐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상선 이사회가 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현 회장이 한발 물러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이 당분간 경영권을 행사하지는 않겠지만 대주주로서의 책임은 다할 것”이라며 “앞서 3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기로 결정했던 것처럼 현대상선 회생을 위해 백의종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감자 및 현 회장 등기이사직 사퇴와 별도로 구조조정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은 벌크선사업부 내 유조선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가격은 1000억원 수준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내달 초 회생 여부 결정

현대상선의 자구노력에도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최대 갈림길은 다음달 초가 될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회사채 투자자 등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회생계획안에 대해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사채권자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채권은행 증자도 없다”며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업 특성상 법정관리는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증자의 또 다른 전제 조건인 고액 용선료 구조 개선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현대상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해운업 호황기에 배를 짓기보다는 빌리는 구조로 사업을 재편했다. 위기가 터지면서 이때 맺은 고액의 용선료 계약이 현대상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영업으로 돈을 벌어도 용선료를 내느라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채권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자본 확충을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상선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측 대표로 외채 탕감 협상을 벌였던 마크 워커 미국 변호사를 고용해 용선료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해외 선주들이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등 협상을 한창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난관들을 뚫고 현대상선이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 산업은행 등 채권단 증자가 이뤄지면 현대상선 경영권은 채권단 손에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산은 관계자는 “채권단이 경영권을 오래 갖고 있는 일은 없을 것이고 곧바로 매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병욱/박동휘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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