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심하네요" 울고 싶은 은행원들

입력 2016-03-03 11:20

(김은정 금융부 기자) “요즘 같아선 정말 하루하루 울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최근 은행 영업점에서 만난 은행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입니다. 고액 연봉, 철밥통,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은행원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눈만 뜨면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오고, 하루하루 출렁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마음을 졸이는 증권회사 직원들에 비해 은행원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평가돼 왔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에 상황이 바뀌었죠. 운송, 쇼핑, 메신저 등 전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카카오 등이 참여한 인터넷은행이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핀테크(금융+기술) 확산으로 정보기술(IT)과 금융업 등 업권간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고요.

지금까지는 한 번 고객으로 만들면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계좌이동제 등이 폭 넓게 시행되면서 이제는 신규 고객 확보뿐만 아니라 기존 고객을 뺏기지 않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하게 됐거든요.

여기에 최근에는 이른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폭탄’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만능 재테크 통장’으로 불리는 ISA는 계좌 하나에 다양한 금융 상품을 넣어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상품입니다. 오는 14일 출시를 앞두고 은행끼리가 아닌 증권회사와 대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시장 선점을 위해 각 은행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결국 영업점 직원들에게 실적 할당 부담까지 더해진 겁니다. 일부 은행은 본점 직원은 일인당 50계좌, 영업점 직원은 일인당 100계좌 이상씩 목표량을 주고 있습니다. 은행원들은 가족과 친척, 인연이 닿는 모든 지인을 동원해 ISA 가입자 유치에 전념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ISA에 한해 은행에 일임업이 허용되면서 은행원들은 벼락치기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임형 ISA를 판매하려면 당장 펀드·파생상품 관련 자격증이 필요해서입니다. ISA를 출시일을 앞두고 은행원들은 급하게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시험을 치르게 됐습니다. 은행권의 요청에 금융투자협회가 오는 28일 예정에도 없던 특별 시험 개설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금융권에 성과주의 확대 바람이 불고 있는 와중에 정부와 금융당국의 칼날이 은행에 겨눠지고 있습니다. 은행권에 만연해 있는 호봉제와 다른 업권에 비해 높은 초임 등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로 5000만원대 은행권 초봉을 낮추고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규정 등도 도입하는 일이 추진됩니다.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금융공기업에 적용되는 성과주의 보다 훨씬 센 수준의 성과주의 도입 방안에 합의한 때문이죠.

은행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에도 미약하나마 변화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하소연입니다. 올 하반기 출범 예정인 카카오뱅크가 카카오처럼 직원끼리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하는 등 젊고 유연한, 전통적인 은행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은행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데 대한 상대적인 영향인 듯 합니다. 다른 직종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요즘 들어 은행원들이 금전적, 업무적, 정서적으로 꽤 고달파 보입니다. (끝)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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