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남기고…시대의 지성 '에코'가 떠났다

입력 2016-02-29 07:01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작가 움베르트 에코가 지난 19일 밀라노 자택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에코는 일반인에게는 작가로 알려졌지만 기호학과 역사·철학·미학 등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시대의 지성’이었다. 그 스스로도 생전에 작가보다는 학자로 불리길 원했다. 그를 세계에 알린 것은 1980년 발표된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중세 수도원을 무대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추리기법으로 다룬 소설이다.

《장미의 이름》은 에코의 방대한 지식이 담긴 현학적인 스토리와 미스터리적인 전개 방식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86년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1989년에는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1988년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진자》도 출간되자마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세 출판사 편집자 3명이 장난삼아 템플기사단이 세계를 전복하려 한다는 음모설을 퍼뜨리려다 이 계획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다는 게 줄거리다. 《전날의 섬》(1994년)은 17세기를 무대로 해상에 정박한 무인선에 닿은 한 청년이 멀리 날짜변경선 너머라고 믿는 섬을 보며 자신의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내용을, 《바우돌리노》(2000년)는 제4차 십자군 원정 중 약탈로 쑥대밭이 된 콘스탄티노플에서 벌어지는 허풍선이 기사의 모험을 다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기호학 이론》 《해석의 한계》 등도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에코는 토리노대에서 중세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국영방송인 이탈리아방송협회(RAI)에서 5년 정도 다큐멘터리 PD로 근무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토리노대와 밀라노대, 피렌체대, 볼로냐대 등에서 미학과 건축학, 기호학 등을 가르쳤다. 그의 지식은 넓고도 깊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개인용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은 그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였다.

그의 작품은 문학과 역사, 다양한 언어적인 맥락을 연계시킨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한 인터뷰에서 “내 소설은 이상한 우연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들을 아카데믹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소설같이 쉬운 소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현대작가로 제임스 조이스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꼽았다.

그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한 프랑스 여배우를 비난하며 한국을 옹호하기도 했다. 에코는 2002년 계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실린 김성동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개고기 문화를 비판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 대해 ‘파시스트’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떤 동물을 잡아먹느냐의 문제는 인류학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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