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계절따라 다품종 소량생산…미국 수제맥주 평정한 '맥주왕'

입력 2016-02-26 07:00
수정 2016-02-26 16:11
Best Practice 보스턴비어컴퍼니

'가족들끼리 마시던 맥주 팔자'…설턴트 그만두고 창업 결심
짙은 호박색·풍부한 거품 '입소문'…대대적 마케팅 않고 맥주바 점령
소형 양조장서 다품종 소량생산…계절용 패키지 '히트상품' 탄생
"마이너 회사 성공 전략은 2가지…품질 더 좋거나, 가격 더싸거나"


[ 박해영 기자 ]
글로벌 맥주시장은 지금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세계 1위인 벨기에의 AB인베브는 작년 말 2위인 영국의 SAB밀러와 합병에 합의했다. SAB밀러는 중국 화륜창업과 조인트벤처를 세워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도 최근 유럽 브랜드인 페로니, 그롤쉬 등을 사들이고 유럽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시장에 거점을 마련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전략이다.

초대형 다국적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눈에 띄는 맥주회사가 있다. ‘새뮤얼 애덤스’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미국의 보스턴비어컴퍼니다. 1984년 보스턴에서 수제맥주(craft beer) 제조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30여년 만에 미국 맥주회사로는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9억6000만달러(약 1조1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엔 매출 10억달러 고지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맥주시장 점유율로는 1%밖에 안 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회사다. 풍부한 향과 독특한 맛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 컨설턴트에서 맥주 양조자로 변신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198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본사. 6년차 컨설턴트로 착실하게 경력을 쌓고 있던 짐 코크는 고민에 빠졌다. 남들이 보기에 코크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마친 후 같은 학교 법학대학원에서 JD(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의 이력서는 화려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를 위해 경영 조언을 해주는 컨설턴트 업무를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코크는 과감하게 회사를 나왔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는 ‘코크 가문이 갖고 있는 비법’이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6대조 할아버지부터 내려오던 코크 집안의 맥주 제조법을 떠올리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락방에서 먼지 쌓인 맥주제조 노트를 꺼낸 코크는 부엌에서 자신의 첫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가족끼리 ‘루이스 코크 라거’라고 부르던 맥주였다”며 “남은 일생을 맥주에 쏟아부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약 8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코크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친척과 지인들에게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투자하면 평생동안 공짜로 맥주를 주겠다고 했더니 선뜻 돈을 내놓았다”며 “1주일 만에 필요한 돈을 다 모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회사에 다니면서 모아둔 10만달러와 주변에서 조달한 14만달러, 총 24만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맥주 제조장비를 설치할 공장은 보스턴 시내의 허름한 창고면 충분했다. 1000제곱피트(약 28평)를 1년에 800달러에 빌렸다. 코크의 말대로 ‘공짜나 다름없는 싼 가격’이었다. 맥주 브랜드명 후보로 800여개의 명단을 작성한 그는 최종적으로 ‘새뮤얼 애덤스’를 낙점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보스턴 차(茶) 사건’을 주도한 정치인 이름이 새뮤얼 애덤스였다. 애덤스 집안 역시 독자적인 제조법으로 수제맥주를 즐겼다는 것도 선정 이유 중 하나였다.


수제맥주 바람 주도

코크 회장이 설립한 보스턴비어컴퍼니의 전략은 철저한 ‘품질 우선주의’였다. 새뮤얼 애덤스를 처음 선보였던 1984년 미국의 맥주 시장은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등 유럽 맥주들이 휩쓸고 있었다. ‘밍밍하고 맛 없는’ 미국 맥주는 인스턴트 음식과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짙은 호박색에 풍부한 거품, 각?꽃향기가 섞인 듯한 풍미를 갖춘 새뮤얼 애덤스는 맥주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보스턴비어컴퍼니는 처음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은 피했다. 대형 브랜드처럼 돈을 쏟아부을 형편이 아니었던 데다 ‘좋은 품질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본다’는 회사의 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새뮤얼 애덤스는 출범 후 15년 가까이에 걸쳐 미국 전역의 맥주 바(bar)로 천천히 영역을 넓혔다. 맥주 소비자와 바텐더들의 입소문이 새뮤얼 애덤스의 유일한 마케팅 도구였다.

코크 회장은 인재 확보도 중시했다. 그는 “유명한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느냐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일에 대한 열정이 채용의 최우선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사업 초창기 멤버들을 뽑을 때 그는 이력서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워싱턴DC의 한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직원을 우연히 만난 코크는 맥주에 대한 생각을 서로 얘기하다가 즉석에서 채용을 결정하기도 했다. 콜린이란 이름의 그 직원은 10년 이상 보스턴비어컴퍼니에서 일하면서 새뮤얼 애덤스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보스턴비어컴퍼니와 같은 소형 양조장(micro brewery)의 장점은 소량 다품종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게 독특한 맛을 내도록 만든 계절용 패키지(seasonal package)는 새뮤얼 애덤스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이다. 라거 맥주와 발효 방식을 달리한 에일 맥주도 호박, 초콜릿 등 다양한 맛을 가미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혔다. 현재 생산하는 맥주의 종류는 60여가지에 이른다. 새뮤얼 애덤스가 대히트를 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수제맥주 제조사가 앞다퉈 생겨났다. 다국적 맥주회사의 익숙한 맛 대신 색다른 맥주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수제맥주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창업 멘토링도 활발

보스턴비어컴퍼니는 연매출이 1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창업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코크 회장은 지금도 미국 지역별로 수제맥주협회가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젊은 사업가들을 격려한다. 이달 초에는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주의 수제맥주협회 행사로 달려가 강연했다.

2008년 시작한 ‘새뮤얼 애덤스 브루잉 아메리칸 드림’ 프로젝트는 코크 회장이 애정을 갖고 챙기는 중요한 행사다. 매년 한 차례 뉴욕에서 창업 발표회를 열어 선발된 팀에 보스턴비어컴퍼니가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경영 노하우 등도 전수한다. 코크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후배 창업자들이 참고할 만한 보스턴비어컴퍼니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메이저 회사에 맞선 마이너 회사의 선택은 딱 두 가지다. 같은 가격이면 품질이 더 좋거나, 같은 품질이면 가격이 싸야 한다. 그리고 창업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할 능력을 갖춘 ‘Chief Everything Officer’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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