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적 토대가 취약한 사회

입력 2016-02-25 17:41
서툰 총론으로 행세하는 사이비들
판세 못 읽고 엉뚱한 주장 쏟아내
사회 운행틀 개조해 다시 시작해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탄도탄 발사 실험으로 한국의 안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 북핵은 한국이 좌우 논쟁에 휘말려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틈을 타고 자라나, 이제는 쉽게 제거하기 어려운 독버섯이 됐다.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나날이 어려워지는 경제 문제를 성찰하고 지금 우리가 다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 사회의 기틀을 떠받치는 지적 토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의 삶을 탐구의 중심에 두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와 열린 토론을 거쳐 발전한다. 이는 사회 각 곳에 음으로 양으로 스며들어 사회 운행 틀의 기초를 다지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문화가 되며 다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지적 토대가 취약하면 내·외부 충격에 사람들의 삶은 쉽게 와해된다.

북핵 문제에 당면해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판세를 읽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첫째는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전문가가 없어서 그럴 수 있다. 이는 엉성한 총론(總論) 정도의 지식과 쓸 만한 연줄을 가지면 그럴듯한 명성을 얻고 꽤 잘살 수 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적 단면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비용만 많이 들 뿐이며, 그러지 않아도 평판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런 전문가가 있지만 이들이 정작 식견과 지혜를 발휘할 위치에 있지 못하고 목소리도 외면당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런 전문가는 적잖게 있기 마련이므로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북핵 문제만이 아니다. 재정을 확대 지출하고 금리를 낮추면 경제가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설명해주는 경제 전문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정책을 주장하는 전문가가 많았지만 경제는 아직도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다.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경제가 더 망가졌을 것이라는 대답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제는 재정을 확대 투입하고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오늘은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오락가락하는 전문가도 꽤 많이 눈에 띈다. 집단 오류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귀에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저금리 정책에 따른 통화 팽창이 원인이라는 설명과 재정 확대와 저금리 정책으로는 경제가 더 망가진다는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집단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오는 지적 공포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여론을 주도하는 전문가들의 엉성한 총론과 각론(各論)으로는 미래 한국 사회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실패를 나란히 열거하는 논리나 동반성장과 공정성장이라는 용어를 앞세우는 주장이 그런 것들이다. 가격과 수량을 통제하고 진입을 제한하는 제반 규제는 법치(法治)의 개념에 어긋나는, 원칙적으로 배제돼야 하는 수단이라는 설명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빈 개념적 용어들의 허무맹랑함을 진리로 믿고 하는 주장이라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이요, 정치적 굴복의 결과라면 곡학아세(曲學阿世)다.

지적 토대가 취약한 사회의 혼란상은 위기 상황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극한 상황에서 한 인간의 됨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북한 핵과 경제 위기에 당면한 지금의 한국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은 물론 미래에 닥쳐올지 모를 혼란을 잠재우고 대한민국의 항구적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특정 문제를 좀 더 잘 짚어볼 수 있는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열린 토론을 통해 새롭고 튼튼한 지적 토대를 공고히 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운행 틀을 바로 세워야 한다. 흘러가 버린 세월이 아쉽고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오각성하고 지금부터라도 바로 시작해야 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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