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전통 제조업…지역내 총생산 해마다 감소세
포항철강공단 내 휴폐업 속출…항만·운송 등 관련기업도 침체
4차 산업혁명으로 제2도약…울산·경주·포항 R&D특구 협약
울산, 제조업+정보통신기술 융합
포항, 해양관광+산업도시로 육성
[ 하인식 기자 ]
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로 사람과 사물을 실시간 연결해주는 초연결시대, 기술 융합을 통한 대변혁과 혁신이라는 ‘4차 산업혁명’을 예고했다. 이 혁명으로 향후 5년 안에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고속 성장 50년.’ 1997년 외환위기에도 굳건히 버티며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울산·포항 경제도 4차 산업혁명의 대변혁 앞에서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굴뚝산업의 수렁에 빠진 울산
울산산업의 위기는 정보기술, 금융 등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을 외면한 채 굴뚝산업으로 대변되는 기존 전통 제조업에 안주해 미래 준비를 게을 ??결과물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대기업 주도의 전통 제조업에 안주해 다가올 위기에 무감각해졌고, 이제서야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제조업에 쏠린 산업구조다. 선진 주요 도시들이 제3의 물결로 표현되는 지식기반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제조업 비중을 줄이고 있는 데 비해 울산은 제조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역 제조업 비중은 2011년 73.4%에서 2012년 72.5%, 지난해에는 69%로 소폭 떨어졌지만 여전히 70%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제조업 수출 중심의 울산산업이 속절없이 흔들리면서 울산의 경제지표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2014년 울산의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69조5484억원으로 2013년(68조3477억원)보다 1조2007억원(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2년 70조7834억원에 비하면 생산액이 1조2350억원 줄었다. 이 여파로 거침없이 증가하던 울산의 1인당 GRDP도 6110만원으로 2012년 대비 231만원 감소했다. 울산의 경제지표가 이처럼 움츠러든 것은 두 차례의 경제위기(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휴·폐업 속출하는 포항
지난해 말 350여개 철강 공장이 밀집한 포항 남구 호동 포항철강관리공단. 경기 악화로 운영난에 내몰린 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6개월 전만 해도 경매로 나온 공장을 보기 어려웠는데 지난해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대구지법 포항지원에는 무려 10곳의 공장 경매물건이 쏟아졌다.
공단 내 입주 胎?가운데 J사 등 16개 업체가 휴·폐업에 들어갔고 포스코플랜텍, 아주베스틸, 대신철강 등 10여곳은 법정관리 중이다.
지난해 포항철강공단의 생산과 수출은 2014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생산은 1조951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5% 줄었다. 같은 달 철강제품 수출은 2014년 10월보다 22.1% 감소한 2억4012만달러에 불과했다.
구조조정도 가속화하고 있다. 동국제강이 지난해 7월 포항의 2후판공장을 폐쇄하고 충남 당진공장으로 일원화하면서 협력사까지 300명이 실직했다. 포항철강공단 고용 인원은 2015년 10월 기준 1만5525명으로, 1년 전보다 632명 줄어들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관계자는 “협력사까지 합치면 지난 1년간 1500여명의 근로자가 철강공단을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포항철강산업단지의 쇠락이 가속화하면서 항만하역, 화물운송 등 연관 산업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포항철강관리공단 관계자는 “다른 업종은 경기가 바닥이면 앞으로는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만 철강업은 딛고 올라설 방법이 없다”며 “철강 경기가 얼마나 더 추락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R&D 특구’로 하나된 울산·경주·포항
울산시는 지난해 말 포항시, 경주시와 세계적인 융복합 비즈니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고 ‘동해안 연구개발특구’ 지정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신청했다. 3개 시가 행정구역 간 경계를 허물 ?초광역 경제권 구축에 나서기는 지방자치단체 출범 이후 처음으로 4차 산업혁명의 거대 물결에 대비한 첫 융합 프로젝트로 꼽힌다.
울산시 등은 협약을 통해 포항의 첨단소재, 경주의 자동차·조선 부품, 울산의 최종재(조선 및 자동차) 등 탄탄한 산업 공급망을 기반으로 미래부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받아 세계적인 첨단 융복합 비즈니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동해안 연구개발특구는 울산 10.7㎢, 경북 12.4㎢ 등 전체 면적이 23.1㎢로 행정구역이 다른 2개 시·도가 공동으로 추진한 전국 최초의 초광역 특구다. 특허등록 건수도 5000여건으로 서울 경기 대전에 이어 4위,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액은 5219억원으로 전국 5위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그동안 울산 경주 포항은 서로 강점이 많은데도 행정구역이 달라 협력을 등한시했다”며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지역 간 교류를 더욱 강화해 인구 200만명의 초광역 창조 경제특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구개발특구는 R&D를 통한 신기술 창출과 성과 확산, 사업화 촉진을 위해 정부가 특별법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2005년 대덕특구를 시작으로 광주·대구·부산·전북(2011~2015년) 등 전국에 5곳이 지정돼 운영 중이다.
울산·포항 간 경제권 구축은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가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12월29일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 53.7㎞ 가운데 터널 등 11.5㎞ 구간을 제외한 42.2㎞를 우선 개통했다. 울산~포항 간은 국도 7호선을 이용하는데, 이 도로는 만성적인 교통혼잡으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1시간 이상 걸렸다. 하지만 부분 개통으로 42분대로 줄었고 내년 6월 전 구간이 개통하면 32분대로 단축된다.
위기는 기회, 새로운 도전 준비해야
울산시는 앞으로도 산업 주도권을 확보한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지역이 가진 최대 장점인 제조업을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적극 나서기로 했다. 나아가 관광산업 등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산업을 제조업의 보완산업으로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울산의 대표적 주력 산업에 지식·기술의 융복합화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 및 R&D 기능 활성화,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과 연계한 금융산업 및 연계 서비스업 발전, 교육·정주 여건 개선 등으로 울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을 주문했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경직된 노사관계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도 강성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강성 집행부가 들어선 현대차도 올해 노사관계가 크게 경직될 것으로 우려된다.
포항시는 해양 중심 개발과 동북아, 인도 등지로 세계화의 외연을 확장해 침체에 빠진 포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조재호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울산이 다시 도약하려면 기존에 준비한 계획을 철저히 추진해 나가는 것과 더불어 지역을 주체적·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현대의 정주영 회장,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지역 사회를 혁신해 경제의 통상적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고, 이것이 다른 전후방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할 창의적 기업인의 유치와 배출 여부는 결국 지역사회 공동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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