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에 또 발목 잡힌 국회
김광진 '첫 타자'…밤샘 발언
[ 이정호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여야 간 이견으로 표류하던 테러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반발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동원해 법안 의결을 저지했다.
정 의장은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도발 위협을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하고 이날 오후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부의했다. 국회법 85조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정 의장은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여야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볼 때 (직권상정 요건인)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직권상정 배경을 설명했다.
더민주는 정 의장이 이날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절차에 들어가자 의원총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신청을 당론으로 정하고 국회 의사과에 107명의 의원 이름을 적은 신청안을 제출했다. 이어 본회의에서 테러 姸峙萱?발의한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의 찬성 토론이 끝나자 오후 7시 7분께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무제한 토론에 들어갔다. 19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폐기된 뒤 2012년 5월 통과된 개정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에 포함돼 부활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하게 밀어붙이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결정까지 이끌어낸 테러방지법이 또다시 국회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혀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역대 국회에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박한상 전 신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중당 소속 의원이던 1964년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한·일협정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1억3000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게 체포동의안을 발의하자 5시간19분에 걸친 연설로 이를 저지했다. 박 전 의원은 1969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당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0시간 동안 발언했다. 필리버스터는 이후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신설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필리버스터가 부활한 19대 국회에선 2013년 11월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상정됐을 때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이 처음으로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사례가 있지만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이 “인사안에 대해 반대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 국회 관례”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를 종료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동의안을 내고, 종결동의안 제출 24시간 뒤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무기명 투표로 통과시켜야 한다. ?여야 의원 수를 감안할 때 여야 합의 없이는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끝낼 수 없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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