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태권도 배우는 폴란드…"3대가 함께 품새 대항전 나가요"

입력 2016-02-23 18:09
태권한류 현장을 가다 (하) 폴란드 '가족 스포츠' 태권도

겨루기 중심 수련 벗어나 가족단위 품새 배우기 열풍
지역 내 학교·태권도협회…초·중·고 정규 과목 추진
해마다 수련장 30% 증가…종합격투기 뛰어 넘어
도복·띠·훈련화 등 '불티'…태권도 용품시장 급성장


[ 유정우 기자 ] “안녕하세요. 파, 울, 리, 나, 입니다.”

지난 1일 오후 폴란드 비드고슈치시(市)에 있는 제스풀슈쿨고등학교 체육관. 태권도복을 입은 금발의 여학생이 사범에게 고개 숙여 깍듯이 인사한 뒤 한국어로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했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총재 이중근)이 연 태권도 무료강습회 참가자다. 강습 시간이 가까워지자 태권도 수련생과 가족, 참관자 등 500여명이 실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재단 측이 사전 접수해 마련한 이날 강습회에는 1587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5 대 1을 넘었다.


◆“우리는 태권가족”

폴란드 태권도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이 함께 배우고 즐긴다는 것이다. 아르투르 흐미엘라시 폴란드태권도협회장(50)은 “폴란드에서는 아들과 아빠가 함께 수련하거나 할아버지와 손자, 딸과 엄마, 외할머니 등 3대가 품새를 배워 가족 대항전에 참가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습회에 참가한 파울리나 슈체파니크(18)는 “태권도를 배운 지 3년째인데 주말마다 부모님과 품새를 함께 맞춰보는 게 가장 큰 재미”라고 말했다. 여덟 살짜리 딸과 함께 체육관을 찾은 카밀라 그라반(35)도 “남편과 함께 K팝을 즐겨 듣는데 태권도가 생활습관을 바르게 잡아주고 한국어까지 배울 수 있어 딸과 함께 아빠도 배우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난해 비드고슈치의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주폴란드 한국문화원컵 전국 태권도 가족품새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1000여명의 수련생과 가족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지역 언론 등 10여개 매체가 대회장을 찾아 취재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미로슬라프 코토비치 비드고슈치 시장(52)은 “가족품새대회의 참여 열기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연구기관 추산으로는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가 75만유로(약 10억2400만원)를 넘는다”며 “시민도 반기고 있어 올해에는 대회 수를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폴란드 교육계는 태권도를 각급 학교의 정규수업 과목으로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안나 리비츠카 제스풀슈쿨고 교감(47)은 “태권도는 물론 예절과 인사법 등을 함께 배우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 사이에서 반응이 매우 좋다”며 “지역 내 학교들과 태권도협회가 초·중·고교 정규 과목에 태권도를 포함하는 방안을 교육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종합격투기보다 높은 성장세

폴란드의 태권도 인구는 5만명 안팎이다. 약 3800만명인 총인구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폴란드태권도협회가 파악한 태권도 수련 시설은 300여곳. 지난 3년간 매년 30% 이상 늘었다. 강철인 철인강태권도장 사범은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종합격투기(MMA)의 수련장 증가율이 연 10%대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라고 평가했다.

폴란드태권도협회의 체제 변화도 이런 인기에 한몫했다. 폴란드 태권도는 ‘북한 태권도’로 알려진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이었다가 1992년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으로 소속을 바꿨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의 교역 규모가 늘어나면서 한국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뀐 데다 올림픽 출전 갈망이 더해진 결과였다. 이후 공격과 실전을 강조하던 ITF식 태권도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겨루기’ 중심이던 수련 방식이 ‘가족 품새’와 같이 즐기는 문화로 바뀌면서 태권도 수련이 대중화됐다는 설명이다.

가족 단위 참여가 늘어나면서 관련 용품 시장도 커졌다. 스포츠용품사 자이크로의 최창영 대표는 “폴란드에서 다른 종목보다 태권도의 인기가 높은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과격한 동작 없이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품새 덕분”이라며 “도복과 띠, 품새 전용 훈련화 등 관련 용품 시장의 매출 규모도 최근 몇 년 새 4배 이상 커졌다”고 설명했다.

바르샤바·비드고슈치=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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