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로 월 300만원, 방 빌려주고 월 200만원
투잡으로 월급 만큼 버는 김과장·이대리들
구조조정 확산에 20~30대 직장인도 회사 충성도 '흔들'
일부 IT기업은 투잡 장려도
퇴근 후엔 투자한 술집으로 출근
"회사 눈치 따갑지만 일단 내가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몇 번 실패 후 회사일에 더 애착
"외도해봤자 별 도움 안돼…지금 하는 업무가 천직인 듯"
[ 홍선표 기자 ]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월급 못지않은 돈을 벌 수 있다면? 회사에선 상사의 호통 소리에 기를 못 펴지만, 퇴근한 뒤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할 수 있다면?
직장 생활과 부업을 함께 해나가는 ‘투잡’은 상당수 직장인의 ‘로망’이다. 하지만 시간적인 제약으로 막상 투잡을 실행에 옮기는 직장인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소문이 나면 회사에서 받게 될 따가운 눈초리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투잡전선’에 뛰어드는 샐러리맨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1~2년 새 부쩍 늘어난 구조조정으로 인해 언제 회사를 나가게 돼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구조조정의 주요 ‘타깃’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장급 이상 간부사원은 물론 20~30대 직장인도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많이 사라졌다.
최근에는 일부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오히려 투잡을 장려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회사에 맡겨두지 말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식 기업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셰어하우스·과외…부업 뛰는 직장인들
시공능력 ‘빅5’에 들어가는 대형 건설사 재건축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김 대리(34). 그는 요즘 서울 홍익대 주변에서 외국인 대상의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한 번 들어오면 2~3개월 정도 머무는 장기 숙박자를 받고 있다.
김 대리는 평소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된 부동산 부자들을 통해 외국인 대상 셰어하우스의 높은 수익률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했다. 셰어하우스 운영에 관심만 갖고 있던 김 대리는 최근 1~2년 새 사내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셰어하우스 운영을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습득한 경매지식 등을 활용해 건물과 대지 소유주가 각각 따로 있는 방 세 개짜리 빌라 한 가구(건물분)를 8000만원에 매입, 지금은 월 200만원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연으로 따지면 30%의 수익률이다.
“사업을 하다가 한 방에 무너진 사람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웬만하면 직장 생활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어수선해져 버렸죠. 사람 일이 바라는 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든든한 버팀목을 하나 마련해뒀다고 생각해요.”
‘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보태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부업의 수익이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큼 커져 버린 직장인도 있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권 대리(32)는 최근 경기 분당에 있는 82㎡짜리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세입자 인생’도 끝났다. 집안환경이 넉넉지 못한 그가 30대 초반에 집을 살 수 있었던 건 회사 사람들에겐 비밀인 부업 덕분이었다. 그는 서울 대치동 일대에서 꽤나 입소문이 난 과외 선생님이다. 입사 후 7년 동안 평일에는 회사원, 주말에는 과외 선생님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권 대리는 주말마다 하루에 2~3시간씩, 총 네 건의 과외 수업을 한다. 수업 하나당 2~4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그룹 과외다. 한 달에 과외로 버는 돈만 300만원이 넘는다. 권 대리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에 빚이 많았다. 대학 4년간 내내 받았던 학자금, 생활자금 대출 등 그가 직접 갚아야 할 빚도 적지 않았다. 회사 월급만으로 언제 갚겠나 싶어 과외를 꾸준히 이어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과외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전문 과외 선생으로 나서거나 학원을 차리는 등 사교육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다. “대기업 샐러리맨 생활을 오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과외 수업을 본업으로 바꾸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과외 수업도 40세가 넘으면 벌이가 줄어든다던데, 어차피 직장 생활을 계속하더라도 그때쯤 되면 구조조정 압력을 심하게 받을 것 같아요.”
“얌체라고 불러도 포기 못해”
기업 입장에선 부업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회사 일을 蘆┍?하는 조직원이 못마땅하다. 외국계 IT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이모 차장(39)은 술집 두 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이 차장은 이 회사에 근무하던 5년 전 서울 이촌동에서 친구들과 공동 투자해 일본식 선술집을 차렸다. 외국계 회사라는 특성 때문에 술자리가 적어 밤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선술집이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잘 되자 그는 선술집이 있는 건물 위층에 와인바도 창업했다. 가게 두 개를 운영하다 보니 회사 일은 뒷전이다.
이 차장은 이제 회사에서 대표적인 ‘저(低)성과자’로 분류된다. 주변의 눈치가 따갑지만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가게는 경기 탓에 한순간에 어려워질 수 있으니 회사에 가능한 한 붙어 있으려고 한다”며 “회사 분위기가 흐려질 수 있지만, 일단 내가 사는 게 중요하다”고 털어놨다.
투잡도 좋지만, 결론은 직장인
투잡을 꿈꾸지만, 만만치 않은 창업 현실에 결국은 회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게 상당수 김과장 이대리의 선택이다. 식품회사에 다니는 윤 대리(34)는 회사 내부에서 ‘꿈 많은 청년’으로 불린다.
올해로 입사 7년차인 그가 지금까지 직장 동료들에게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만 열 번이 넘는다. 그가 이 같은 뜻을 처음 밝힌 것은 4년 전이다.
윤 대리는 “회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며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그에게 직장 동료들도 처음에는 조용히 물밑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지 반 년 만에 ‘부동산 중개업계의 거물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회사 일이 워낙 바빠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다음에 찾아온 꿈은 카페 창업이었다. 대학가에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를 차리면 쏠쏠한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마다 바리스타(커피 제조사) 과정을 다니며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 역시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최근에는 핀테크(금융+기술)에 꽂혀 관련 업종을 분석하고 있다. 처음엔 응원했던 동료들도 이제는 그를 그저 꿈 많은 청년 정도로 여긴다. 그의 한 직장 동료는 “그동안 퇴직 준비라며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윤 대리가 제일 잘하는 일은 자신이 맡은 회사 마케팅 업무”라며 “지금 직장이 그에게 천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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