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줄어들면 소비자 손해"
EU, 영국·이탈리아 통신사 합병 '부정적'
미국서도 케이블업체 M&A 난항
[ 양준영 기자 ]
유럽의 이동통신회사 간 인수합병(M&A)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점 심화와 소비자 부담 증가를 우려한 규제당국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서다. M&A가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홍콩 재벌 리카싱의 허치슨왐포아가 이끄는 영국 이동통신사 스리는 스페인 텔레포니카 자회사인 O2를 인수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합병 심사를 받고 있다. 허치슨은 이탈리아에서도 스리이탈리아와 러시아 빔펠콤 자회사인 윈드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EU 경쟁당국이 이들 합병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영국 이동통신시장에선 O2·보다폰·오렌지·스리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4위 스리와 2위 O2의 합병이 성사되면 영국 최대 이동통신사로 올라서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스리이탈리아와 윈드가 합쳐지면 1위인 텔레콤이탈리아와 양강 체제를 이루게 된다. 유럽 이동통신사들이 합병에 나서는 것은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네트워크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EU 경쟁당국은 소비자 피해를 우려한다.
마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사진)은 “합병으로 이동통신 사업자 수가 4개에서 3개로 줄면 경쟁이 약화돼 네트워크 투자가 줄어들고 요금은 상승해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는 텔레노르와 텔리아소네라 간 합병이 EU 반독점 승인을 얻지 못해 무산됐다.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도 EU에 스리와 O2의 합병을 승인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샤론 화이트 오프콤 의장은 “합병 움직임이 지속되면 최근 몇 년간 경쟁에 따른 혜택을 누리던 소비자에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프콤은 EU가 합병을 승인할 경우 신규 사업자 허가 등을 통해 경쟁을 촉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최대 케이블업체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의 합병이 미국 통신위원회(FCC)의 제동으로 무산됐다. 이후 차터커뮤니케이션이 타임워너와 인수계약을 맺었으나 규제당국의 반대에 다시 부딪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NYT는 “FCC는 합병법인이 콘텐츠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스트리밍 서비스회사에 대한 콘텐츠 판매를 가로막는 등 경쟁과 혁신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합병되더라도 엄격한 승인조건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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