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8 대 5로 파기환송
"산별노조의 규약이 단결권 제한 못해"
[ 양병훈 기자 ] “형식보다 실질을 중요시해야 한다.”
대법원이 19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근로자들의 전국금속노동조합 탈퇴와 기업별 노조 전환 결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형식상 산별노조 산하 지회여도 실질적으로는 자체 결정권과 조직을 갖고 활동해왔으면 산별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총회 결의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노조가 조직형태를 유지 또는 변경할 것인지 등의 선택은 단결권의 주체인 근로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전제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노조의 조직형태 변경과 관련해 노동조합법 규정을 해석·적용할 때는 이 같은 실질적인 의의 및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고 근로자 결사의 자유, 노조 설립의 자유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전제 하에서 대법원은 “산별노조 지회라고 하더라도 조직 고유의 사항에 관해 독자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있으면 기업별 노조에 준한다”며 “독립된 사단인 근로자단체는 형식상 산별노조 지회여도 기업별 노조에 준하는 지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기업별 노조에 준하는 지위가 있으면 그 실질에 적합하게 독립해 의사를 결정하고 법률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노조는) 총회에 의한 자주적·민주적 결의를 거쳐 그 지회 등의 목적 및 조직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다”며 “이러한 해석이 근로자에게 결사의 자유 및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및 노조법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발레오만도지회가 독립된 사단에 준하는 지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발레오만도지회는 본래 기업별 노조였다가 금속노조로 편입됐고 총회의 탈퇴 결의도 압도적 지지로 통과된 만큼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면 “탈퇴가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올 거라는 전망이 많다.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 13명 중 8명이 이러한 의견에 찬성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법관 간 의견이 갈릴 때는 다수결에 따라 최종 결론을 낸다. 나머지 5명의 대법관은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만이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며 “발레오만도지회는 노조의 실질이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조직형태 변경 결의는 무효”라고 소수 의견을 냈다. 홍승권 변호사는 “산별노조의 규약이 근로자의 단결권을 제한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