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시계 제로'] 홍콩 H지수 또 폭락…손실구간 진입 ELS 1조 더 늘어

입력 2016-02-11 18:11
파생상품 100조 시대의 그늘

5% 떨어져 7657…2009년 이후 최저
원금 떼일 위기 ELS 모두 4조 넘어서


[ 송형석 기자 ] 11일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5% 가까이 급락하면서 원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더 늘어났다. 이날 손실구간에 새로 진입한 ELS 물량은 1조원어치 안팎이다. H지수가 7835였을 때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집계치(3조3000억원어치)에 비춰볼 때 줄잡아 4조원 이상이 이른바 ‘깡통 ELS’에 합류했다는 의미다.

이날 H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4.93% 떨어진 7657.92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9년 이후 최저치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지수를 기초로 발행된 공모 ELS 중 이날 새롭게 손실구간에 진입한 상품은 5678억원어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은행에서 판매한 주가연계신탁(ELT), 사모 ELS 등을 합하면 최소 1조원어치 이상이 ‘녹인(knock-in·원금 손실구간)’ 지점 이하로 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H지수가 추가로 더 떨어지면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H지수 7000선에선 총 5조2800억원어치, 6500선에서는 7조9700억원어치의 ELS가 원금 손실구간에 들어간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의 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수로 지난해 상반기까지 ELS의 기초자산으로 널리 활용됐다. 유럽 대표 기업들의 주가를 지수화한 유로스톡스50, 미국을 대표하는 S&P500과 함께 ELS 3대 지수로 불린다. 유로스톡스50과 S&P500은 원금 손실을 걱정할 만큼 하락하지 않은 상태다.

ELS는 계약 이후 3년이 지난 만기 시점까지 기초자산 가격이 손실구간(판매 시점 대비 40~60% 이하)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원리금을 되돌려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단 한 번이라도 기준선 밑으로 가격이 내려가면 지수가 하락한 폭만큼 원금을 떼이는 것으로 계약 조건이 바뀐다.

깡통 ELS도 현재 시점보다 지수가 40%가량 올라 상환기준을 충족하면 사전에 약정한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홍콩시장의 약화된 투자심리를 감안할 때 단기간에 지수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ELS를 포함한 파생결합상품 발행액은 이달 들어 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H지수가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은행권 등에서 저가매수를 노린 신규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 결과다. 파생상품 시장이 커지면서 증권사들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깡통 ELS가 늘어날수록 상품을 발행한 증권사의 손실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실장은 “지난해 말 ELS 발행 잔액은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의 116.2%에 해당한다”며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 증권사들의 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