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생생 리포트
상품도 예술품처럼…이젠 '비즈아트' 시대
현대차, 일본 작가 WOW와 협업…센트럴시티, 국내 최대 벽화 제작
미술가와 상생 통해 기업 이미지 차별화…상품 고급화도 유도
[ 김경갑 기자 ]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브랜드체험관 ‘현대 모터스튜디오’에 들어서면 현란한 색채의 영상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대차가 일본 아티스트그룹 ‘WOW’와 손잡고 제작한 인터랙티브 영상 설치작품 ‘유니티 오브 모션’이다. 기계와 인간, 자연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의 원리를 시각예술로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 중심의 회사 이념과 가치에 대한 메시지도 담아냈다.
기업과 미술이 공생하는 ‘비즈아트(bizart)’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비통, 데이미언 허스트와 리바이스, 제프 쿤스와 BMW의 협업이 큰 성공을 거둔 가운데 국내에서도 미술과의 상생에 열을 올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를 통해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가 하면 미술가의 작품을 상품과 접목하는 ‘협업’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도 적지 않다. 기업과 미술가의 협업은 대개 한국메세나협회를 통해 작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메세나협회를 통한 기업들의 시각예술 분야 지원은 지난해에만 150억원에 달했다. 전년도(126억원)보다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자동차부터 비행기까지 ‘예술 옷’
(주)센트럴시티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외벽에 국내 최대 벽화를 설치하고 있다. 수채화가 정우범 화백의 신작 ‘환타지아’ 이미지를 활용한 이 벽화는 가로 50m, 세로 40m 크기로 오는 26일 완성될 예정이다. 센트럴시티는 원색으로 그린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채운 벽화를 통해 백화점과 버스터미널을 찾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전략이다.
기업이 자사 브랜드에 예술적 에너지를 접목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아트마케팅의 사례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작년 7월 ‘모네 마케팅’을 펼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각종 광고에 인상파 화가 모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각색, 자동차에 예술적 감성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항공은 매년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작가를 선정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어주는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의 설치작가 율리어스 포프를 프로젝트 작가로 뽑았고, 오는 4월30일까지 그의 작품 ‘비트. 폴 펄스(bit.fall pulse)’를 선보인다. 데이터의 최소 단위(bit)가 떨어지며(fall)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맥(pulse)을 반영한 이 작품에서는 대한항공의 미래 비전까지 읽을 수 있다. 재규어코리아는 지난달 25일 서울 동대문디 愍曠철瓚?DDP)에서 신차 ‘뉴 XJ’를 선보이는 자리에 조각가 권오상 씨가 제작한 알루미늄 조형물 ‘뉴 스트럭처 11’을 함께 공개해 신차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일깨웠다.
◆작품과 상품의 동행
미술품이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상품에 미술의 옷을 입히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8일 추상화가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담은 프랑스 명품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2013’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라벨에 담긴 이 화백의 작품은 ‘점’ 시리즈의 하나다. 라벨 가운데에 자주색 점을 배치해 와인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한층 높였다. ‘샤토 무통 로칠드’ 라벨에 한국 화가 작품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제주관광공사는 이왈종 화백의 ‘제주 생활의 중도’ 시리즈를 앞치마, 스카프, 넥타이의 포장지 디자인으로 사용했다. 문화콘텐츠 기업 M.Y 인베스트는 오는 5~6월 추상화가 정현숙 씨의 그림 이미지를 활용한 조명과 시계를 선보일 계획이다. 행남자기(이상봉), 가전회사 모뉴엘(이동기 하태임), 설화수(이이남), 참기름 제조회사 공식품(모용수), 건강보조식품 생산업체 삼성농원(김보미), 한국금산인삼협동조합(김현주), 늘그린(김인호), 기능성 비누회사 백련동(장정후) 등도 화가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신상품을 시판하고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기업들이 문화·예술계와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품격을 높이는 한편 고급스러운 감성을 고객들에게 전해 斂?있다”며 “기업과 연계를 통해 작가들은 로열티 수입과 작품 홍보, 판매 촉진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서 이 같은 추세는 갈수록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는 '아트 사랑방'
자체 전시공간인 ‘아트 사랑방’을 갖추고 기획전을 여는가 하면 작가 초대 행사를 여는 중견·중소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화가들에게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대신 기업은 이미지를 개선하고, 신제품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등에 관해 자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작년 11월 서점을 찾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 ‘교보아트스페이스’를 마련, 오는 28일까지 두번째 기획전 ‘소설 또 다른 얼굴’을 연다.
MPK그룹(옛 미스터피자)은 서울 방배동 사옥 이름을 ‘미피하우스’(미스터피자+미술관)로 짓고 사무실과 매장, 카페, 화장실 등에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소품을 걸었다.
에르메스코리아의 ‘아틀리에 에르메스’, 에트로의 ‘백운갤러리’, 유로통상의 ‘유로갤러리’, 삼탄의 ‘송은아트스페이스’, 안국약품의 ‘갤러리AG’, 이브자리의 ‘이브갤러리’, 샘표식품의 ‘샘표 스페이스’, 애경그룹의 ‘몽인아트센터’, KT&G의 ‘상상마당’, 동일방직의 ‘동일갤러리’ 등도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소비자와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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