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뺀 정보 마음껏 활용"
정부, 빗장 풀었지만
기업들 "아직 갈길 멀다"
[ 전설리 기자 ]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국가다. 전자정부와 같은 공공 인프라도 대부분 전산화돼 있다. 이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통해 매일 막대한 양의 자료가 쏟아진다. ‘빅데이터 금광’이 넘쳐나는 것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도는 데이터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지나친 규제가 빅데이터를 사업화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개인정보보호 법제는 개인정보·위치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엄격한 사전 동의를 강제하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다”며 “과잉 규제가 다양한 사업 추진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자칫 개인을 식별하는 정보가 조합, 생성될 것을 우려해 기업들이 빅데이터 기술 도입을 주저하거나 기존에 도입한 기업도 협소한 범위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업체인 페이스북은 미국 데이터 중개업체 액시엄, 데이터로직스 등과 제휴해 오프라인에서 구매기록 등을 확보한 뒤 이를 분석해 온라인 광고에 활용한다. 온·오프라인 연계를 통해 엄청난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이용자가 SNS에 올린 글을 분석해 영화 상품 등을 추천하는 단순한 맞춤형 서비스도 우연하게 포함될 수 있는 개인정보 때문에 사실상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이런 불만을 해소하고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구에 대한 정보인지 확인할 수 없도록 조치한 ‘비식별 개인정보’를 기업이 사전 동의 없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개인정보 관련 법령에 비식별 정보에 관한 근거를 마련하고 어디까지가 비식별 정보인지를 정하기로 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원칙만 던져놓았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비식별화 정보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지에 따라 규제 완화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비식별 정보
주민등록번호처럼 특정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을 뺀 데이터로 빅데이터의 원천이 된다. 이 같은 정보를 묶으면 은행은 특정 직업군의 대출 연체 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카드사는 결제 정보를 활용해 상권분석 컨설팅을 할 수 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