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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의 새로운 놀이 문화는 사회와 기성세대의 핍박을 받아왔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어린놈들은 언제나 쓸모없고 괴상한 짓거리에 몰두한다. 미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란 원래 기존 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새로움에 열광하는 종족들이다. 그들의 문화를 도덕과 규율로 억압하려는 순간 멀쩡한 어른들도 '꼰대'가 된다.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로큰롤(Rock and Roll) 음악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는 20세기 꼰대질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수많은 록 스타를 배출한 미국이지만, 록 음악 초창기만 해도 이러한 음악은 '사탄의 음악' '마약' 취급을 받았다.
당시 백인들은 음악에 맞춰 다리를 떨거나 엉덩이를 흔드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겼다. 본질적인 이유는 인종차별이었다. 로큰롤은 미국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에서 파생됐다. 50년대의 미국은 주크박스에 가수의 이름과 곡명, 그리고 흑인이냐 백인이냐가 표시되던 시절이었다. 백인들은 점잖은 재즈와 팝을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척 베리, 리틀 리차드 등 흑인들의 리듬에 백인 자녀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재앙이었다. 그건 흑인들이나 하는 짓거리였다.
오늘날 미국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TV 프로그램에서 엉덩이를 흔들면 방송국에 수십만 통의 협박편지가 날아들었다. '애드 설리반 쇼' 제작진들은 그의 허리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상반신과 얼굴만 클로즈업한 채 방송을 내보냈다(하지만 이것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교사들과 학부모단체들은 아이들이 로큰롤에 빠져 타락했다며 개탄했다. 모든 10대들의 일탈은 로큰롤 때문이었다. 정치인들은 "로큰롤은 마약"이라고 선언한 뒤 공연과 라디오 방송을 금지시켰고, 로큰롤 음악을 틀던 라디오 DJ들은 대거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승리하는 듯 보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대에 끌려갔다. 척 베리는 구속됐다. 리틀 리차드는 갑자기 목회자로 변신해 자신의 잘못을 회계했다. 로큰롤의 선구자 버디 홀리와 리치 밸런스는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로큰롤 열풍은 2~3년 반짝하다 잠잠해졌다.
성공할 것만 같았던 로큰롤 말살작전은 1960년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등장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비틀즈는 로큰롤을, 롤링스톤즈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밴드였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거부하던 흑인들의 음악을 바다 건너 온 영국인들이 들려줬다. 1964년 미국 싱글 레코드 판매의 60%는 비틀즈의 노래였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란 말이 생겨났다. 비틀즈는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그러나 비틀즈에 맞설 만한 미국의 록 스타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초창기 로큰롤의 역사를 보면 한국의 게임 산업이 처한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게임에는 정치인과 학부모들의 요구로 인해 생겨난 각종 규제들이 얽혀있다. 마약 취급을 받는 것도 똑같다. 청소년들의 탈선 원인 1순위로 꼽힌다. 심지어 자국에서 꽃을 피우던 문화가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다 결국 안방을 내준 것도 비슷하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게임은 PC방 점유율 40%의 외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다.
언론도 그 시절의 미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사탄의 음악에 청소년들이 물들어간다는 기사로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물론 지금은 그 어떤 미국 언론도 록 음악이 마약이라거나 사탄의 음악이라 말하지 않는다. 록 음악이 가진 문제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록 스타는 미국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다. 최근 '무한도전'에 출연해 사랑을 받은 잭 블랙도 어린시절 록 음악에 미쳐 살았다.
한국에서는 과거 미국 언론의 행태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달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한국 게임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칼럼을 통해 비판했다. 공익에 반하는 게임 산업에 대해 정부가 예산까지 써가며 육성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1950년대 로큰롤을 매도하던 미국 꼰대들의 시각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류 언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며 PC방 전원을 내린 방송사의 뉴스는 지금도 회자되는 사건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게임 중독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은 관성이 됐다. 그만큼 취재가 쉽고 헤드라인을 뽑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의 공감도 쉽게 얻는다. 그러면서 스스로 꼰대의 길을 걸어간다. 꼰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젊은이들은 신문과 뉴스를 외면한다. 1950년대도 아닌, 무려 60년이 지난 21세기 한국의 모습이다.</p>
백민재 한경닷컴 게임톡 기자 mynesca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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