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료 낮추기'에 사활 건 현대상선…외환위기 때 외채협상한 미국 변호사 투입

입력 2016-02-01 19:45
호황기 때 계약한 용선료, 매년 2조원 이상 부담

'구원 투수' 마크 워커 영입…외국 선주들과 할인 협상

채권단, 자율협약 방안 검토


[ 김보라 / 김일규 기자 ] 현대상선이 지난달 29일 채권단에 최종 자구안을 제출하고, 채권단은 이를 토대로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의 골자는 대주주, 채권단, 외국 선주 등 ‘3자 간 고통분담’이다. 현대그룹은 각종 자산 매각과 오너의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채무연장 등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대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원활한 출자전환 등을 위해서다.

▶본지 2월1일자 A1, 13면 참조

◆배 빌리는 돈만 한 해 2조원

이번 합의안이 현대상선 정상화로 이어지려면 외국 선주를 대상으로 한 용선료 할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상선이 운영하고 있는 선박은 현재 총 125척이다. 이 중 85척이 외국 선주로부터 빌려온 배다. 현대상선은 호황기 때 선박을 장기계약한 탓에 시세보다 5~10배 많은 용선료를 외국 선주에게 지급하고 있다. 한 해 2조원 이상이 배 임대료로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해운 운임이 오르고 시황이 살아나더라도 용선료를 현재 수준으로 지급하면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현대상선의 용선 비중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부채비율 200% 이하 유지’를 권고받고, 총 100여척의 배를 내다 팔았다.

2003년 이후 해운업 호황이 이어지면서 국내 해운업체들은 배 인도까지 수년이 걸리는 선박 발주 대신 배를 빌리는 방법을 택했다. 용선 계약은 통상 5~15년 장기계약을 맺게 돼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 호황기였던 2010년 당시 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선박을 빌리면 하루 5만달러였다”며 “지금은 경기 침체로 임대료가 하루 8000달러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외채 협상 30년 베테랑 투입

현대상선은 최후의 수단으로 용선료 조정을 택했다.

이를 위해 마크 워커 변호사(사진)를 ‘외국인 용병’으로 긴급 투입했다. 워커는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국제금융 관련 업무만 30년 이상 해온 베테랑이다. 1980년대 멕시코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2012년 그리스와 2013년 키프로스까지 세계 각국의 재정위기 때 ‘구원투수’로 활약한 인물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한국 정부를 도와 IMF 및 월가 금융기관들과의 외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99년 대우그룹 법률 고문으로 채무탕감 협상을, 2001년 하이닉스 제휴 협상과 2003년 SK글로벌의 채무 만기연장 협상 등을 맡기도 했다.

용선료 할인은 쉽지 않다.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장기적인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최근 운임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선박 대여료도 비정상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보라/김일규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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