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록 보고 보증 연장
낙후된 금융관행이 화 불러
업황 분석 제대로 않은 채 조선업 지원…땅치고 후회
외부 전문가 활용 특례보증
수출 중소기업 보증 대폭 늘릴 것
[ 심성미 / 임원기 기자 ]
‘모뉴엘 사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김영학 무역보험공사 사장(사진)과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는 이렇게 요약됐다. 2014년 10월 정보기술(IT) 제조업체 모뉴엘이 수출입대금을 허위로 부풀려 3조원대의 천문학적 사기대출을 받다가 관세청에 적발된 ‘모뉴엘 사태’로 은행 등 금융회사는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김 사장은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뉴엘 사태는 한국의 낙후된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며 “무보 역시 이런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뉴엘 사태 이후 김 사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김 사장은 “대출 보증을 해 줄 때 재무제표나 과거 채무 상환기록 같은 서류 심사에만 집착했을 뿐 기업과 해당 산업의 실체를 보려고 하지 않은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인 관행 潔駭?rdquo;고 설명했다. “무보는 매출, 수출실적 등을 위주로 검토하고 은행은 ‘무보가 보증을 해 줬으니까’ 하면서 그냥 대출을 해 준 허술한 금융시스템이 모뉴엘 사태의 본질”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당시 중소기업들은 재무제표상 숫자나 수출 기록만 나쁘지 않으면 얼마든지 정부 지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더구나 정부 산하 공기업이 수출 대금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도 넘쳐났다.
문제가 됐던 모뉴엘의 홈시어터PC 역시 조금만 더 면밀히 산업을 들여다봤으면 실체가 없는 껍데기라는 걸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게 김 사장 설명이다. 하지만 서류에 겉으로 나타난 숫자만 보고 심사하는 관행이 결국 사기대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산업과 이들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 준 채권단 문제도 비슷한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대출해 줄 때 한국 조선산업이 10년 후에도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조선업 업황은 어떤지 등에 대한 분석을 까다롭게 했다면 이렇게까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2013년 말 부임한 뒤 조선산업에 대해선 신규 수출보증을 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모뉴엘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렀지만 “이 사건이 무보의 사업 관행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보증 시스템도 바꾸고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마음가짐까지 모두 달라졌다”는 것. 우선 ‘서류 행정’ 대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면밀하게 선별해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 사장은 “서류만으로는 대출 보증을 서줄 수 없지만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출 보증을 서주는 ‘특례 보증’ 프로그램 규모를 지난해 500억원에서 올해 2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증 심사 과정에서 내부 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전문가의 힘도 빌리기로 했다.
그는 “외부 전문가들로 특례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선정된 기업에 보증을 서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과 보험 규모는 계속 늘려 나가기로 했다. 2013년 31조원이던 중소기업 보증지원 규모를 올해는 46조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중소기업 수출 안전망 차원에서 수출 초보 기업에 대해선 일정 금액 이상의 보험을 무보가 대신 들어주는 사업도 시작하기로 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 중이다.
김 사장은 “수출이 급감하고 있지만 이럴수록 한국 수출 산업 구조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대기업 수출이 한계에 직면한 만큼 중소기업을 수출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무보가 힘을 보탤 것”이라고 덧붙였다.
■ 모뉴엘 사태
2014년 10월 연 매출 1조원대의 가전업체로 알려졌던 모뉴엘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3조원이 넘는 사기대출을 받은 사실이 탄로난 사건. 이 회사는 수출 가격 조작과 허위 수출입 반복 등으로 30배 이상 매출을 부풀렸고, 이를 통해 금융회사와 무역보험공사 등으로부터 대출 또는 보증을 받았다.
심성미/임원기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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