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선희 기자 ]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며 투자심리 개선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러나 일본발(發) 훈풍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며 엔화 약세 등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일본은행,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 도입 선언
문정희 KB투자증권 연구원은 1일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출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보인다"며 "물가 압력이 현저히 낮아 목표치 2%에 도달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인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목표금리 도입을 결정했다.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예치하는 자금의 일부에 -0.1%의 금리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엔화 강세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엔화 강세가 6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일본 경기회복의 원동력이던 엔저 효과가 소멸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수출 증가율은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소 연구원은 일본은 양적완화(QE) 보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경제에 더 실효성이 높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양적완화는 미국처럼 자본시장 중심 구조하에서 실효성이 높다. 일본은 유럽과 같은 은행대출 중심의 자금조달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기 진작을 위해선 대출 확대가 필수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추가 통화완화 기대감과 함께 유동성 증대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채권금리는 하락(가격 상승)했고 주가 지수와 원자재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선언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며 "지난달 증시 급락 배경이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는 '패닉' 심리로 촉발된 것이므로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본의 깜짝 정책으로 다른 주요국의 통화완화 조치가 기대되는 점도 투자심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다만 유럽중앙은행(ECB)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글로벌 증시의 개선 효과는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 유로스탁스50지수는 지난해 10월 ECB의 통화정책회의 이후 추가 통화완화 기대에 6% 급등했다. 그러나 12월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곧바로 하락 전환한 바 있다.
이 연구원은 "위험자산 가격의 바닥형성은 가능하지만 글로벌 증시는 미국의 금리인상 지연,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강화되기까지 박스권 장세가 연장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국내 증시, '엔저' 주목…"자동차株 보수적 접근해야"
국내 증시는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따른 엔화 약세 정도에 주목하고 있다. 엔화 약세가 심화될 경우 일본과 경합을 벌이는 국내 수출 업종의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조치가 나온 이후 엔화 가치는 가파른 약세를 나타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장중 121.7엔까지 떨어진 것. 이는 한 달반 만에 최저치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엔화 의 '팔자' 분위기가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소재용 연구원은 "엔화가 전고점인 125엔을 넘어 추세적인 엔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의 금리인상 기대감이 낮아지고 대외 불안요인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또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를 감안하면 이미 달러·엔 환율은 오버슈팅(과열 국면)에 놓여있다는 진단이다.
김경욱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업종은 실적 및 전망 부진, 엔화 약세 재개라는 암초에 걸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그러나 다른 전통 수출주는 상대적 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주가·실적 바닥론이 확대되며 강세를 보이는 철강, 건설, 조선 등의 산업이 긍정적"이라며 "외국인 매수 가능성이 높은 IT 가전, 디스플레이, 미디어 교육, 에너지 등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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