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중·고교에서 전교 5위권 뚱뚱한 아이였던 작가, 다이어트 학교 설정해 10대들의 살을 빼는데…

입력 2016-01-29 17:24
(8) 김혜정의 '다이어트 학교'


5명의 여자가 나눌 공통주제는?

15세, 25세, 35세, 45세, 55세의 여자.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다섯 명이 막힘없이 나눌 대화 주제를 선택하라면? 단연 다이어트다. 하긴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게 다이어트와 패션에 신경 쓰는 시대다. 미국에 갔을 때 ‘국토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과 ‘뚱뚱한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놀랐다. 길에서 덩치가 산 만한 여성들과 계속 마주쳤다. 특히 LA 디즈니랜드에 가서 놀이기구도 안 타고 단체로 몰려다니는 뚱뚱한 사람들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비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에 가면 보통 체형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외국인들은 동양인 중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예쁘고 날씬하다고 입 모아 말한다. 정작 우리나라 여성들은 스스로를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비하한다. 정상 체중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도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말하기 일쑤다. 나의 소설 《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에 등장하는 중학교 2학년 문영과 친구들은 화장을 하고 몸매에 신경 쓴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해 15세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우리의 경쟁상대는 대학생 언니다. 언니들이 화장하고 다니니까 우리도 화장을 해서 예쁘게 보여야 한다. 방학 때 성형수술 하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

‘요요’라는 시시포스

어린 친구들만 그런 게 아니다. 50대가 돼도 47㎏ 신드롬에 빠져서 세상의 모든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다이어트 행렬을 보자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가 떠오른다. 못된 짓을 많이 하여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 끙끙대며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봐야 바위는 여지없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요요현상으로 힘들게 뺀 몸무게가 제자리로 돌아와 절망하는 여성들과 영원한 고역을 되풀이하는 시시포스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책따세’ 추천도서이자 ‘아침독서’ 추천도서인 김혜정 작가의 《다이어트 학교》는 꾸준히 사랑받는 청소년소설이다. 10대들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사회가 외모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폐해가 생기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뚱뚱한 아이’였다고 고백한 김혜정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주인공 홍희는 59맙?도전하고

《다이어트 학교》의 교장 마주리 원장은 TV에 자주 나오는 명사로 뚱뚱한 여성들의 로망이다. 엄청난 학비에도 입학경쟁이 치열한 《다이어트 학교》에 중학교 2학년 주홍희가 입학한다. 몸무게가 80㎏에 육박하는 홍희를 학교 친구들은 ‘주뚱’이라며 부르며 틈만 나면 놀린다. 그래서 조르고 졸라 아빠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싼 비용을 내고 다이어트학교에 입학했다. 주뚱의 목표는 40일 만에 59㎏을 만드는 것이다.

다이어트 학교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 살을 찌워야 할 플러스반과 살을 빼야 할 마이너스반. 마이너스반은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지만 ‘골룸, 해골바가지’라는 별명을 달고 사는 플러스반은 많이 먹고 운동은 조금만 한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따라 하는 게 힘들지만 홍희는 점점 살이 빠지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다이어트 학교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비난을 일삼는 마주리 원장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마주리 원장은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며 학생들을 자극할 목적으로 “돼지새끼들” “거지 같은 몸”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불만을 말하거나 조금이라도 태도가 불량하면 벌점을 매겨 독방에 가두고 밥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공부, 워터파크 가기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는 등 실망스러운 일이 계속 벌어진다.

결국 홍희는 학생들에게 떠밀려 원장에게 요구사항을 전했다가 24시간 동안 독방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살은 많이 빠졌지만 정신적인 피폐함을 견디기 힘들어진 홍희는 다이어트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비밀 결의를 한다. 결과를 위해 과정은 무시되는, 굶으면서 단시간에 살을 빼는 ‘다이어트 감옥’을 탈출해 마주리 원장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한다.

단순 다이어트 아닌 건강한 몸만들기

이후 친구들은 단숨에 살을 빼기보다 건강한 몸만들기에 열중한다. 함께 모여 운동하고 일지를 인터넷에 올려 서로를 격려하면서. 《다이어트 학교》는 단순히 다이어트의 폐해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뚱뚱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실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때 홍희처럼 80㎏에 육박했던 작가가 실제로 학교에서 겪은 사실을 담아낸 이 작품은 편견과 배려, 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100세 시대에 오래오래 사용하려면 잘 가꾸어야 한다. 적정한 체중은 미용이 아닌 건강의 필수 요건이다. 적당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면 살찔 틈이 없다. 들어온 만큼 내보내야 하는데 실컷 먹고 움직이지 않으니 살이 찔 수밖에.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비만이 되기 쉬운 시기다. 음식을 조절하고 공부하는 틈틈이 운동하는 지혜를 발휘하자. 몸은 정직하다.

이근미 < 소설가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