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9급공무원, KAIST 출신 의사…
도 넘은 '쏠림현상' 국가생산력 떨어뜨린다
2016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만점자는 16명이었다. 서울대 입학본부는 이과 7명, 문과 9명의 만점자가 모두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그리고 이과 만점자 7명은 모두 의과대학을 택했다.
문과 만점자 9명은 비교적 고르게 전공을 택했다. 경영학·경제학·사회과학대(이상 각 2명) 사회학·정치외교학·인문대(이상 각 1명) 등이었다.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취업이 어려운 탓에 뚜렷한 인문계 인기학과가 없다는 반증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최우수 이공계 인재가 서울대 의대로만 몰리는 현상은 씁쓸하다. 알다시피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화두다. 출범 4년째 청년창업을 미래먹거리와 신성장동력의 원천으로 밀고 있지만 벽은 깨지지 않는다. 수능 만점자의 서울대 의대 쏠림현상은 그 생생한 현실의 날카로운 단면이다.
반면 창업 바람의 진원지 격인 공대나 자연과학대에 지원한 만점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대신 의느님(의사+하느님) 되기가 ‘헬조선에 대처하는 똘똘한 청소년들의 자세’임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서울대 못지않은 이공계 인재들이 모이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KAIST 학생들은 국비로 공부한다. 과학인재로 미래사회에 기여해달라는 암묵적 기대치가 담겼다. 그러나 이들도 의학전문대학원 등에 진학해 의사로 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누가 이들을 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개인의 행복추구권 차원에서 합리적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행복에 도달하는 경로가 한 종류인 것은 문제로 보인다.
‘의느님 올인’ 현상의 또 다른 변주는 서울대생도 9급 공무원에 도전하는 사회, 초등학생 때부터 공무원이 꿈이었고 고교 때부터 공무원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회다.
물론 학벌과 직업 선택의 상관관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개인의 선택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전문직과 공무원으로 요약되는 안정적 직장이 ‘꿈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사회구조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자문해보자. 이른바 명문대 졸업생들이 ‘철밥통’ 하급 공무원이 되어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게 생산적 국가의 모습인가.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 능력을 지닌 인재라면 좀 더 창의력을 요하는 분야에서 걸맞은 능력을 발휘하는 나라가 미래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지체 현상’은 조금씩 현실화하는 것 같다. 지난 5~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6’에선 한국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무인·전기자동차 드론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미래신성장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기업과 인재가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직과 공무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내모는 세상이 문제인 것, 맞다. 사회구조의 결함이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 한 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꿈을 좇으라는 주문은 청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질’이란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단 구조주의의 함정에 빠지진 말자. 개인의 노력과 구조적 변화는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 반대급부로 주체적 의지를 생략해선 곤란하다. 사회는 안전망 확충과 실패 용인의 문화를 내놓고 개인은 도전 경로의 다변화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수능 만점자는 좀 더 다양한 꿈을 갖고 진로를 택할 수 있게 우리사회가 진일보하길 기대한다. ‘창송하다(창업해서 죄송합니다)’ 따위의 신조어는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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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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