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명 상품권' 사세요"…액면가 80%에 팔리는 '청년배당'

입력 2016-01-21 18:40
'상품권 깡' 전락한 청년배당

성남시, 정부 반대에도 포퓰리즘 정책 강행

상품권 지급되자마자 수십건 '깡 거래'
성남시 요청에 중고사이트 게시글 전부 삭제
서울시 '청년수당'도 정부와 갈등 빚어


[ 강경민/고윤상 기자 ] “어제부터 성남사랑상품권을 팔겠다는 전화가 수십건 걸려왔습니다. 평소엔 하루에 한두 건 정도 판매 문의가 왔었는데 갑자기 늘어서 의아하더라고요.” 성남시 서현동에서 상품권을 판매하는 한 업체 대표는 21일 이같이 말했다. 경기 성남시가 지난 20일부터 청년배당을 시행한 이후 지역 상품권 판매소에 성남사랑상품권을 20~30% 싸게 팔겠다는 ‘상품권 깡’ 문의가 평소보다 수십배 폭증하고 있다. 한 인터넷 중고카페에서만 이미 최소 수십건의 상품권이 거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제소에도 청년배당 강행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20일 “지옥 같은 ‘헬조선’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의 ‘묻지마 이민’?늘고 있다”며 “이런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청년배당을 시행한다”고 말했다. 돈으로 표를 매수하려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정부의 강한 반대에도 청년배당을 강행한 것이다.

청년배당은 성남에 주민등록을 두고 3년 이상 거주한 만 19~24세 청년에게 분기당 12만5000원씩 연 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당초 1인당 연 1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50만원으로 지급액을 낮췄다. 올해 만 24세 청년 1만1300여명에게 지급한 뒤 단계적으로 만 19세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배정된 예산은 113억원이다.

보건복지부는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을 강행하자 지난 18일 대법원에 제소했다. 다만 기초자치단체인 성남시는 상위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 관할이어서, 경기도가 소송의 원고다. 경기도는 복지부 요청에 따라 청년배당 예산안 재의를 요구했으나 성남시는 이를 거부했다.

성남시는 청년배당을 시행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성남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 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을 지급했다. 청년배당을 시작한 지 하루 만인 21일 오후 6시까지 전체 지원대상자 1만1300여명의 절반이 넘는 8512명이 상품권을 받아갔다. 상품권 지급이 시작되자마자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상품권을 팔겠다는 게시글이 수십건 올라왔다. 21일 상품권을 판매한 A씨는 “9만원어치를 6만원에 팔려고 글을 올렸는데 누군가가 전화를 해서 12만5000원어치 전부를 다 팔라고 요청했다”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얘기해 줬다”고 털爭畢?


◆판매글 내려달라는 성남시

이 같은 사실을 접한 성남시는 인터넷 중고카페 운영진에게 게시글 삭제 및 금지어 등록을 요청했다. 또 게시판에도 시장 비서실 이름으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게 성남시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이 정책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고 거래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성남시 관계자들은 인터넷 중고카페 운영진을 직접 찾아가 게시글 삭제를 요청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판매글은 오후 6시께 모두 삭제됐다. 시 관계자는 “이미 개인에게 지급된 것이라 그것을 사고파는 것을 단속할 방안은 없다”며 “2분기부터는 상품권 대신 전자카드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품권 깡’ 논란이 불거지자 이 시장은 이날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현금 줬으면 좋았겠느냐”며 “지역화폐라 어떻게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구직 활동 중인 만 19~29세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매달 5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 정책을 내놓은 서울시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청년수당 예산안 재의 요구에 불응한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대법원에 제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든 만 24세 청년을 지원하는 성남시와 달리 서울시는 중위소득 60% 이하 청년 중 일부를 선정해 지원하는 것”이라며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 성남시와는 개념이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저소득층과 장기 미취업 청년에게 우선 지급할 방침이다.

성남=강경민/고윤상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