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매년 되풀이되는 실리콘밸리 타령

입력 2016-01-19 17:40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 김현석 기자 ] 또 공허한 실리콘밸리 타령인가. 지난 18일 미래창조과학부의 청와대 업무보고를 보고 든 생각이다. 미래부는 경기 판교 테크노1밸리에 1분기 중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캠퍼스를 출범시켜 아시아 최고의 창업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아시아판 실리콘밸리 조성’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래부뿐만이 아니다. 다른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도 매년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GEI)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2위에 그칠 정도로 창업은 바닥 수준이고, ‘콜버스’ ‘헤이 딜러’가 불법 논란에 휘말린 것처럼 창업 친화적 환경은 규제에 막혀 요원하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의 3년 후 생존율도 2013년 기준 41.0%로 OECD 주요 17개 회원국 중 최하위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넘치는 투자자금과 이민 친화적 환경, 스탠퍼드 등 명문 대학을 보고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재가 바탕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민정책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시민단체의 반대 등으로 학교 병원 등 편의시설도 짓기 어려워 외국인에게 살 만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돈도 넘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 매년 수백개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수백억달러를 뿌린다. 이 돈은 창업자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이들은 이 돈으로 다시 창업하거나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그렇게 활동하는 벤처캐피털이 1만6000여개, 이들이 투자하는 돈이 한 해 250억달러(2014년 기준)에 이른다.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해야 할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싹을 죽인다’거나 ‘문어발 확장’이란 욕을 먹을 게 뻔해서다. 인수보다 베끼는 식으로 돈을 아끼는 기업도 있다.

실리콘밸리가 ‘실리콘밸리’가 된 배경은 이렇지만, 정부는 인재와 돈이 도는 환경, 문화를 조성하기보다 건물 등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 급급하다. 건물을 짓고 종잣돈을 뿌리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다. 스타트업 아카데미 등 판교에 들어선 각종 기관들이 스타트업 창업에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호박에 줄만 긋는다고 수박이 되진 않는다.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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