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이 어제 비리혐의로 10명을 구속하고,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3명이 농협의 전·현직 임직원이다. 무더기 기소지만 ‘넉 달이나 수사했다면서 이 정도뿐인가’ 하는 국민도 적잖을 것이다. 구조적 비리나 해묵은 적폐가 이번 일회성 수사로 다 해소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솔직히 한두 번 보아온 일도 아니다.
재판에 넘겨진 농협 간부들은 수주 및 납품 비리, 불법 로비 같은 범죄 유형이 많았다. 농민에게 가는 각종 보조금의 집행창구이기도 한 농협의 ‘갑질’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달리 보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정치 과잉’과 ‘오염된 정치’가 이런 협동조합 같은 조직에까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저급한 패거리 문화에서 생겨나는 불법적 이권 거래가 지역 농협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많은 단체들이 과열 혼탁한 선거나 사업을 둘러싼 추문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회장 자리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진출의 디딤돌 정도로 인식되는 일부 여성단체조차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는 재향군인회장도 금품선거 등의 의혹 스캔들에 연루됐다. 국고 보조금 책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거나 정부, 국회에 상시적으로 선을 댈 수 있는 협회나 단체라는 곳이면 어김없이 퇴행 정치에 오염돼 있는 것이다. 온 나라가 보조금에 찌들어 이권투쟁을 벌이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모두가 ‘공짜돈’ 서로 먹자고 외치는 모양새다. 나랏돈은 속된 말로 먼저 먹는 게 임자인 양 온통 싸움질이다.
저급한 정치가 범람하는 곳은 예외없이 정부의 보조금, 출연금, 지원금이 배분되고 집행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검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결국 국회가 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예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공식 로비 통로인 곳도 한둘이 아니다. 무수한 ‘넥타이족’과 검은 승용차가 사철 내내 국회 의원회관을 가득 채우는 한국적 풍경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저질 국회라고, 구태 정치라고 정치인 욕할 상황도 못 된다. 온갖 사회단체들이 정치를 타락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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