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출신도 탐내는 국민연금 이사장

입력 2015-12-28 19:14
수정 2015-12-29 09:16
국제금융계 거물들 "한국 대통령 몰라도 당신 이름은 안다"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 신임 이사장 유력…기금운용 독립화 주목


[ 황정수 기자 ]
현재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국민연금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밑의 차관급 공공기관장이다. 연봉은 1억4720만원(2015년 기준). 직제상 이사장 아래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2억8320만원)보다 1억원 이상 적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처럼 근무지도 서울이 아닌 지방(전북 전주)이다. 본사 옆에 있는 관사 아파트(약 100㎡)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런데도 장관까지 지냈던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1급(차관보) 출신 퇴임 관료가 주로 가는 다른 공공기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기 이사장 유력 후보로도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꼽힌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최광 전 복지부 장관, 김호식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최근 10년간 이 자리를 거쳐간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장관급 인사가 격을 낮추면서까지 국민연금 이사장직을 탐내는 이유는 뭘까.

◆골드만삭스 회장이 직접 의전

2010년 4?전광우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이 세계 1위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의 미국 뉴욕 본사를 방문했다. 1층 로비엔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 마중은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왔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한국에서 온 당신을 예우하기 위해 골드만삭스 역사상 처음으로 태극기를 로비에 걸었다”며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모르지만 국민연금 이사장은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 공모철만 되면 장관급 인사가 몰리는 첫 번째 이유다. 2009~2013년 국민연금을 이끈 전광우 전 이사장은 “금융위원장 시절보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하며 만난 해외 거물이 더 많았다”고 했다.

국민연금 이사장의 국제적 영향력은 2000년 이후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한 적립금(운용자산)에서 나온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은 500조원에 달한다. 세계 연기금 중 3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9년 적립금의 10% 미만이던 해외투자 비중도 2015년 6월 말 22.3%(111조3000억원)로 높아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제 금융계 인사들은 웬만한 한국 경제부처 장관보다 이사장을 만나는 데 더 의의를 둔다”며 “2011년 국민연금이 뉴욕사무소 개소식을 했을 땐 인근 도로가 IB 헤지펀드 은행 등의 회장들이 타고 온 수십 대의 리무진 때문에 마비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2015년)와 젭 부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2013년)가 방한했을 때도 당시 최광 이사장을 만나 현지 투자를 요청했다.

◆“한 개 부처 기능은 넘어섰다”

국내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국민 복지 측면에선 ‘노후대비의 최후 보루’가 된 지 오래다. 1999년 4월 ‘전 국민 대상 연금제도’ 시행 이후 국민연금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 8월 말 기준 2148만명이 됐다. 국민연금은 KB 신한 등 주요 금융지주회사는 물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대표 기업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기능은 어지간한 정부 부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장관 출신이라고 해도 쉽게 이사장 자리를 맡을 수 없다. 2013년 이사장 공모 때도 전직 장관과 국회의원 등이 지원했지만 서류심사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수백조원의 적립금을 해외에 효율적으로 분산투자할 능력이 있는 ‘금융전문가’이면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 체계 등을 구축할 수 있는 ‘복지전문가’여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국민연금을 책임질 신임 이사장에게는 숙제가 더 늘었다. 연금재정 고갈 우려의 대응책 마련과 기금운용본부 독립 등 공단 지배구조 개편, 보험료 인상 등 산적한 이슈를 정면돌파해야 한다. 복지부는 이번주에 문형표 전 장관을 신임 이사장으로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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