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해빙 '물꼬'
"위안부 문제 서둘러 풀자"…정상 합의 2개월 만에 해결
한·일 "불가역적 해결" 확인
안보·경제 위해서도 개선 필요…한국, TPP 가입 탄력 기대
[ 장진모 기자 ]
한국과 일본이 28일 위안부 문제를 최종 타결함에 따라 그동안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북아시아 역내 안정을 위해 중요한 외교 틀인 ‘한·미·일 3각 공조’가 복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일 관계 경색을 초래했던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되면서 한·일 간 경제관계도 본격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부 문제 더 이상 제기 안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위안부 문제 타결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위안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더 이상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양국 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만큼 한·일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한·일 관계는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그해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취임하면서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검증하겠다면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뒤 지난달까지 2년9개월여 동안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 관계 급랭은 박근혜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북핵 문제 해결, 평화통일외교, 경제교류 등을 위해 일본과의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을 위해서도 한·일 관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관계개선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에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위안부 문제만 해결되면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본 측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달 2일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조기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중국 경사론’ 벗어나나
미국도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타결을 촉구해왔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외교 및 군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중요한 틀이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공조다.
그런데 그동안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3각 공조에 틈이 생겼다. ‘중국 경사론’까지 나올 정도로 박근혜 정부가 친(親)중국 행보를 보이자 오바마 정부는 한·일 양측에 “관계 개선을 정상화하라”고 전방위로 압박해왔다.
아베 총리는 올 상반기 미국 워싱턴DC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미·일 간 ‘신동맹’을 선언했다. 한·미·일 3각 공조 틀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미·중 사이의 ‘샌드위치론’과 ‘동북아 왕따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대일 관계 악화가 해소된 만큼 우리 외교의 운신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일 관계 정상화를 계기로 한·미·일 3각 공조를 복원함으로써 미·중 사이에서도 한국이 외교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킨 데 이어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한국의 TPP 가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