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의 “안해봤으면 하면 될 거 아냐”
(뉴욕=이심기 특파원) “경제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오직 피와 땀이 있을 뿐입니다.”
1990년 11월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예방을 받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치켜세웠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한국으로 반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소련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도 함께 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칭찬을 받은 정 명예회장은 정색을 한 표정으로 “종교에는 기적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며 “오직 피와 땀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김영덕 전 현대종합상사 미주법인 사장의 기억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6년 6월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9억3000만달러짜리 주베일 산업항 건설계약을 따내면서 시작됐다. 당시 계약으로 현대가 받은 선수금 2억달러(7억 사우디 리알)이 외환은행에 입금되자 당시 은행장이 건국후 최고의 외환보유액을 기록했다고 전화를 올 정도로 큰 공사였다. 하지만 주베일 항만공사를 경험이 일 되?현대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현대가 무모한 객기로 사우디 앞바다에 침몰하게 됐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김 전 사장은 당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기술고문으로 파견돼 아라비아만 일대의 유전발굴을 위한 토질조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우디 앞바다를 메워 해상구조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우디만 일대의 지층구조를 꿰뚫고 있는 김 박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정 명예회장이 그를 잡기 위해 사흘동안 그를 붙잡고 삼고초려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마지막에는 명예회장님이 표범이 먹이를 잡을 듯한 눈빛으로 ‘김 박사, 이쪽(현대)으로 와야겠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해줘야겠어’라고 말하는데, 더 이상 안된다고 할 수가 없더라구요.”
이렇게 현대그룹에 합류한 그는 주베일 항만공사를 시작으로 1993년 현대종합상사 미주법인 사장으로 오기전까지 17년간 정 명예회장을 보필했다.
“이봐, 해봤어?”
김 전 사장은 정 명예회장의 이 얘기를 처음 들을 때 속으로는 ‘자기도 안해 본 일이면서, 해봤어라고 한다’며 속으로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진짜 생각은 그 다음말에 있다”며 “그것은 ‘못해봤으면, 하면 될 거 아냐’이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는 물론 그 이전 현대조선소 설립과 이후 자동차, 전자산업에 진출할 때도 지레 겁을 먹고 반대한 사람들에게 “이봐, 해봤어? 못해 봤으면 하면 될 거 아냐”라는 말로 설득하고 때론 질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더구나 이들 사업은 정 명예회장도 해보지 않은 분야였다. “이봐 해봤어?”는 직원을 다그치는 말이었지만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 명예회장의 화법에는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자신감과 신념, 불굴의 노력을 통해 어떤 난관도 돌파하는 특유의 철학이 담긴 어법이라는 설명이다.
김 전 사장은 정 명예회장에 대해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가는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열정적인 삶을 통해 가장 심오한 비전과 철학을 직접 보여준 사례”라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겨쓴 “이봐, 해봤어? 못해봤으면 하면 될꺼 아냐”라는 문장에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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