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협정 위헌 아니다'는 판결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

입력 2015-12-23 17:43
헌법재판소가 어제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물은 두 건의 헌법소원에 대해 각각 각하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헌법소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딸인 이모 씨가 2009년 정부가 부친의 미수금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지급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면서 시작된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 일본 정부와 기업에 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국가 간 협정이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만큼 위헌이라는 주장이었다.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제1항의 위헌 여부를 물은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한·일 두 나라 국민의 재산권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미수금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지급하도록 한 법 규정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6년여를 끌어온 이 헌법소원이 각하와 합헌으로 결정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자칫 시비 소지가 있는 판결이 나왔다면 국가 간 협정이 원천무효가 되는 국제적 망신이 되는 것은 물론 더욱 복잡한 문제의 출발점이 될 판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법부는 비슷한 몇 건의 사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려 한·일 관계를 더욱 꼬이게 한 것이 사실이다. 판결들은 국민정서에는 부합했을지 몰라도 국제적으로는 심각한 의아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을 해결하는 데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한 2011년의 헌재 결정도 그런 것이었다. 2012년엔 대법원까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판결들은 일본에서는 전혀 수용되지 않고 있다.

국가 간 협정의 정당성을 그때그때 시류에 따라 재평가할 수는 없다. 1965년의 협정을 실효시킨다면 복잡한, 그리고 우리에게 오히려 불리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한·일 관계를 치명적 갈등으로 몰고갈 것이 너무도 뻔하다. 한·일 간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 피해보상 문제도 존재했다고 하겠지만 해방 전 한국에 거주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던 일본인들의 사적 재산 문제 또한 복잡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일본은 미군정의 일본인 재산 귀속처분이 1907년의 헤이그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간단하지 않은 과거사 문제를 대중의 감정으로만 처리한다면 한·일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수렁으로 밀려들게 된다. 이번 헌재 결정을 끝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가 더는 새로운 불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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