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택한 포스코…미탈과 프리미엄 철강 공동개발

입력 2015-12-22 17:47
포스코-아르셀로미탈, 기술 협력

권오준 회장-미탈 회장 회동…마케팅·기술 제휴 협의

미탈 60개국 네트워크 활용…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
철강경기 불황 타개 안간힘


[ 김보라 기자 ]
포스코와 아르셀로미탈이 협력을 추진하는 건 철강 경기 불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포스코와 아르셀로미탈은 10여년간 라이벌이었다. ‘철강업계 사냥꾼’으로 불리는 아르셀로미탈은 2000년대 포스코를 적대적 인수합병(M&A) 후보에 올려놓을 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미탈과 손잡는 것은 이제 적군도 아군도 따로 없을 만큼 철강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부가 철강 공동개발

이번 협력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사진)이 지난해 말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처음 논의됐다. 권 회장이 미탈 회장에게 “우리에게는 최고의 기술이 많은데, 현재 포스코의 힘만으로는 유통에 어려움이 있다”며 “같이 마케팅을 해보자”고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이후 냉연, 열연 등 자사 샘플을 아르셀로미탈 연구개발(R&D) 센터에 보냈고, 아르셀로미탈 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의 40쪽짜리 분석 보고서를 제출했다.

포스코가 미탈과 손을 잡기로 한 건 고부가가치 철강 판매에 집중하자는 경영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포스코는 2017년까지 프리미엄 제품 판매 비중을 전체 매출의 5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판매가 국내 판매를 넘어섰고, 최고급 제품인 월드프리미엄(WP) 제품의 판매 비중도 올해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권 회장은 “세계 철강 시장 15억t 중 프리미엄 제품은 10% 정도인데, 이 시장은 철강 경기와 상관없이 제값이 보장된다”며 “포스코가 ‘팔리는 제품’을 생산해 이 시장을 공략하는 게 유일한 살 길”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이번 협력으로 아르셀로미탈이 보유한 60개국 네트워크에 자사 제품을 유통하는 대신 일부 고급 제품의 기술 제휴 등을 추진한다.

해외 법인과 계열사 축소 등을 내년 경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제품 판매를 위해 법인을 신설하는 것은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아르셀로미탈은 M&A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여서 기술력에서 부족한 점이 있고, 포스코는 해외 법인이 아시아권에 집중된 만큼 양사가 상호 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해외 철강사와도 비슷한 협력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황 장기화에 프리미엄 제품 주력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 가격은 중국산 공급 과잉에 따라 수년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철강재 가격은 그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포스코 주가는 올 들어 30% 이상 하락하며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톰슨로이터가 포스코, 아르셀로미탈, 신일철스미토모, JFE, 타타스틸, 뉴코어 등 중국을 제외한 세계 6대 철강사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6개사의 시가총액은 5년 새 3분의 1로 줄었다. 파산이나 구조조정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 2위 철강사인 US스틸은 1년 새 주가가 70% 폭락하고 최근 직원 3000여명을 해고했다. 영국 최대 철강사인 레드카제철소가 폐업을 신청했고, 중국 제철소들의 파산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철강사들은 고가의 고품질 제품 생산과 마케팅으로 불황 탈출을 꾀하고 있다. 포스코는 자동차 강판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올초 인도에 180만t 규모의 고급 자동차용 냉연강판 공장을 준공했고, 지난 9월 광양제철소에 연산 50만t 규모의 용융아연도금강판공장(CGL)을 착공했다.

현대제철은 1295억원을 투자해 충남 당진 2냉연공장에 고급 자동차용 고강도강판 생산설비를 완공, 내년 1월부터 생산할 예정이다. 올해 자산 매각과 공장 폐쇄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동국제강은 고급 건축 내외장재를 만드는 냉연사업부에 힘을 싣고 있다.

세아그룹은 최근 미국 법인인 세아스틸아메리카 대표이사 부사장에 이순형 회장의 사촌동생인 이준 전무를 승진 발령하는 등 북미지역 마케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반강과 고급강의 수익 차이는 불황일수록 더 크게 벌어진다”며 “지난해 5배였던 두 강종의 수익 격차가 올해 10배까지 커진 만큼 철강사들의 프리미엄 제품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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