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아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유대인의 돈에 관한 철학은 어린 시절 가정교육에서부터 형성된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13세 되는 해에 ‘바르 미츠바(Var Mitzvah)’라는 성년식을 치른다. 성년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평균 200달러 정도의 축하금을 낸다. 이때 조부모나 가까운 친지는 성년이 된 손주 또는 조카에게 꽤 큰 금액을 물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모아진 돈을 아이 명의로 저축 또는 투자하는데, 이때부터 부모는 자녀에게 기본적인 경제관념과 자산을 불리는 법을 가르친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단순히 돈을 물려주는 것에 더해 돈을 지켜내고 관리하는 법을 함께 가르친다.
최근 한국에서도 자녀가 어릴 때부터 단계적으로 증여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장기간에 걸쳐 증여하면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시간과 복리(複利)의 힘을 빌려 비교적 적은 액수로 나중에 큰돈을 만들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손자녀를 위한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조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수명 증가로 손주와 함께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진 데다 성인 자녀 세대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조부모가 손자녀 한 사람에게 쏟는 정서적 가치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조부모들은 손주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조부모들이 지난 1년간 손자녀에게 가장 많이 지출한 항목은 선물과 용돈이다. 하지만 지출 금액으로 보면 금융상품과 교육비 비중이 가장 컸다. 손주를 위해 가입한 금융상품이 어떻게 쓰이기를 원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미래 교육비(47%)’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긴급자금(20%)’, ‘유사시 필요할 때(1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이 같은 조부모들의 수요를 반영해 세대를 이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험상품도 나왔다.
우리에게는 성년식이 없다. 하지만 ‘미래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유대인들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아직까지 미흡한 학교나 가정의 금융교육을 돌아볼 때 유대인으로부터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돈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담아 물려줄 수 있다면 더욱 값진 유산이 되지 않을까.
윤원아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