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화끈한 '박인비식 공격골프' 기대하세요"

입력 2015-12-20 18:37
K골프스타 도전! 2016 (1) '골프 여제' 박인비

중·고교 미국 유학시절 수학 만점받던 '꼼꼼 소녀'
"이젠 '침묵의 암살자' 별명 들을수록 좋아져요"
리우올림픽 금메달 따 '커리어 골든슬램' 목표


[ 이관우 기자 ]
별명이 ‘침묵의 암살자’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 획득이라는 두 개의 축포를 동시에 쏘아올린 ‘골프 여제’ 박인비(27·KB금융그룹)다. 이 무시무시한 별명이 그는 “맘에 쏙 든다”며 새댁처럼 웃었다. ‘K골프’의 리더 격인 그를 지난 1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만났다.

이날 제주도개발공사와 삼다수 홍보 연장계약을 맺은 그의 얼굴에는 ‘모든 걸 다 이룬 자’ 특유의 여유가 넘쳤다. 중계 화면에 비치는 ‘냉철’ 이미지와 달리 푸근했고 달변(達辯)이었다.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운을 떼봤다.

“처음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로 잘한다는 뜻이고 코스에서만큼은 카리스마가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좋아지더라고요.”

그 ‘카리스마’가 제대로 작렬한 게 올해였다. 지난 6월 메이저대회인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단일 메이저대회 3연패(2013~2015)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패티 버그(미국),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세 번째다. 8월에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다.

정점을 찍은 건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투어챔피언십에서다. 그는 최저타(69.415)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를 수상하며 역대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 헌액 요건(27점)을 채웠다. LPGA는 대회에서 우승(메이저 2점)하거나 ‘올해의 선수상’, 베어트로피상 등을 타면 헌액 점수 1점씩을 쌓아준다. 물론 투어 활동 경력 10년을 채워야 한다. 2007년 LPGA에 데뷔했으니 내년이 꼭 10년째다.

“딱 1점만 채우면 되는 거라 내년으로 넘기면 왠지 안 될 것 같았어요. 너무 의식해서 그런지 마지막날 후반전에서는 퍼팅을 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노숙자 급식 등 자원봉사와 가족행사로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그의 요즘 관심사는 와인과 드라마, 요리다. 그는 “요즘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애인있어요’ 같은 주말 드라마를 볼 때”라며 “그럴 때마다 나도 아줌마가 다 됐다는 느낌이 확 든다”고 했다. 남편(남기협·34)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보는 등 요리공부도 틈틈이 한다. 최근엔 친동생(박인아)이 와인업체에 취직하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취한 다음날의 느낌이 너무 싫더라고요. 와인도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로만 마십니다.”

동생도 한때 골프선수를 지망했지만 부상 때문에 일찌감치 운동을 접었다. 두 살 터울인 자매의 성격은 정반대다. 동생은 느긋했지만 그는 뭐든 빨리 해야 직성이 풀렸다. 방학숙제로 받은 한 달 치 일기를 방학식 날 하루 만에 미리 써놓기도 했다. 그는 “오죽하면 엄마가 ‘한 배로 낳은 애들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신기해했을 정도”라고 했다.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는 성격은 닮았다. 중요한 퍼팅을 실패했거나, 우승했을 때 리액션이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이런 덤덤함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차분한 성격 덕분인지 어렸을 땐 수학도 잘했다. 미국에서 보낸 중·고교 시절, 수학은 거의 만점을 받았다. 그는 “성격이나 치밀한 면을 보면 골프 하려고 태어난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남편은 제 인생의 구세주예요. 제가 슬럼프에 빠져 있던 2009년부터 4년간 제 곁에서 정신적 지주가 돼줬거든요. 망가져 있던 샷까지 완전히 뜯어고쳐줬으니 은인이나 마찬가지죠.”

잔 동작이 많았던 스윙을 남편의 지도로 간결하게 바꾼 뒤 박인비의 샷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내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하는 동계훈련에서는 30~50m짜리 쇼트게임을 집중 보완할 계획이다.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을까.

“국가를 대표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대표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가는 게 첫째 목표입니다. 당연히 금메달을 따고 싶죠.”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금메달을 모두 따면 이른바 ‘커리어 골든슬램’을 달성하는 셈. 112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한 골프에는 그 길을 먼저 간 사람이 아직 없다.

그동안 못 해본 진짜 ‘박인비표’ 골프에도 욕심이 난다고 했다. 성적과 기록 부담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동안은 어딘지 모르게 도망치는 골프를 한다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는 “이젠 홀가분해졌으니 타수를 좀 잃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골프를 해볼 작정”이라며 “내년엔 화끈한 박인비를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