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제적 구조조정 지원, 법률 탓할 새 없다

입력 2015-12-20 17:53
수정 2015-12-21 05:07
원샷법 처리 놓고 몽니부리는 야당
구조조정 시점 놓치면 천길 나락
현행법 안에서 우선 지원 나서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sskku@hanmail.net >


‘한국병’에 대한 진단은 나와 있다. 양극화, 저성장, 고령화가 병명(病名)이다. 병의 원인은 급격한 복지요구, 성장동력 상실, 수출과 내수의 동반침체, 고용과 연금 등에서 세대갈등 표면화, 경제활력 상실이다. 30대 그룹 중 3분의 2가량이 부채비율 200% 이상, 이자보상비율 1 이하로 재무적 불안상태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긴급처방전을 발급했지만, 과연 처방전에 적힌 약이 주효할지는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일단 약을 써 봐야 하는데, 약을 조제해야 할 국회가 계속 몽니를 부린다. 19대 국회는 최악의 직무유기 국회라는 데 이론이 없다. 자동폐기법안이 18대의 6301건을 넘어 1만1000건에 이를 전망이다.

면세점법 개정으로 세계 3위 수준인 면세점 사업을 일거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으로 끌어내린 것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기업을 하기에는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주파수 경매도 불안요인이다. 칼자루를 쥔 정부가 어떤 작품을 빚을지 숨죽여 보고 있다. 차라리 정부 부처 담당공무원이 지정되지 않아야 해당 산업이 발달한다고 할 정도다. 화장품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에 K뷰티가 발달했고, 인터鳧?규제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한때 한국이 정보기술(IT) 최강국, 인터넷 게임강국이 됐다고들 한다. 정부가 IT산업에 공무원을 투입하고 공인인증서제도, 게임 셧다운제도 등 규제를 시작한 이래 IT강국과 인터넷 게임강국의 지위를 잃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가능했던 일들이다. 삼성은 방위산업을 한화에 매각했으며, 정밀화학은 롯데에 넘겼다. CJ는 케이블TV사업(CJ헬로비전)을 SK에 매각하기로 하고 정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구조조정 차원에서 보면 CJ그룹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다. 케이블TV시장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는 2010년 6039만명에서 2014년 5350만명으로 줄었다. 유료 케이블TV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대체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작, 유통, 전송 등 방송 각 부문을 모두 갖춘 소수의 종합방송사업자들로 업계 전체가 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글로벌 통신사들은 미디어기업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AT&T, 소프트뱅크 등이 방송사를 인수했다. 보다폰의 케이블TV 사업자 리버티글로벌 인수 시도 역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LG, 포스코, KCC, 코오롱, 동원도 계열사를 합병했다. 그동안 문어발식 그룹확장이라고 욕먹던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며, 칭찬받아 마땅한 조치다. 이런 선제적 구조조정은 더 활성화돼야 하는데, 속도가 느린 것이 불만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 다우케미칼, 듀폰, 히타치, 소니, 세가 등은 주력산업을 팔아가며 선제적 구조조정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야당은 ‘기업활력제고법’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당이 국회선진화법 핑계를 대는 것도 염치없다.

국회가 법률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위원회들이 현행 법률에 따른 자발적 구조조정까지 규제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법률 탓’ 말고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그 범위 내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행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도 지원할 수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sskku@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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