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 항문 질환
치질 예방하려면
피부 바깥 통로 생기면 '치루'…항문 내부 찢어지면 '치열'
대변볼 때 고통·혈변 나오면 '치핵' 의심…병원부터 찾아야
장시간 배변습관·음주 삼가고 좌욕 등 항문 주위 따뜻하게
[ 이지현 기자 ]
연말을 맞아 잦아진 모임과 회식으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 문모씨(46). 매일 7시간 이상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근무하는 문씨의 항문 건강에 최근 들어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문 주위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혈변을 보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항문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것이 부끄러워 차일피일 미루던 그는 항문 바깥으로 피부가 빠져나온 것을 보고 병원을 찾았으며 ‘치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모든 질환은 초기에 치료를 받아야 고통을 줄이고 증상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심한 통증과 불편이 있어도 병원을 잘 찾지 않는 병이 있다. 바로 항문 질환이다. 문씨처럼 항문 질환이 있는 사람의 상당수가 증상을 느끼면서도 방치하다 병을 키운다. 일부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껴 대변 보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변비가 蠻?배변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을 겪기도 한다.
겨울은 항문 질환자들의 고통이 심해지는 계절이다. 추운 날씨에 항문 주위 혈관 압력이 높아져 증상이 악화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항문 질환의 증상과 예방법 등을 알아봤다.
전체 치질의 80% 차지하는 치핵
항문 질환을 대표하는 ‘치질’은 치핵과 치열, 치루 등으로 나뉜다. 치핵은 항문 주위 혈관과 조직이 덩어리를 이뤄 튀어나오거나 피가 나는 것을 말한다. 치열은 항문 부위가 찢어지는 것을, 치루는 항문 안쪽과 바깥쪽 피부 사이에 구멍이 생겨 이 구멍으로 분비물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중 환자가 가장 많은 질환은 치핵으로, 전체 치질의 80%를 차지한다.
항문 내부 조직은 혈관과 쿠션 역할을 하는 점막 아래 근육 등으로 구성된다. 잘못된 배변 습관 등으로 항문 압력이 높아지면 점막 속 조직을 누르게 되고 항문 주위 조직이 변하면서 탄력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항문 안쪽에 덩어리가 생기고 이 덩어리가 커져 밑으로 내려오면서 항문 밖으로 빠지는 증상을 보인다. 이를 치핵이라고 한다.
치핵이 있으면 항문에서 피가 나거나 통증을 호소한다. 가려움증이 생기기도 하고 항문 쪽에 피부가 늘어져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치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66만명에 이른다. 40대 남성 환자가 가장 많았다. 과로, 과음, 스트레스 때문에 치핵 증상이 악화해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았다.
알코올은 치질의 적
날씨가 춥고 술자리가 늘어 ご?겨울철에는 치핵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킨다. 항문 근처 점막과 혈관도 알코올 때문에 부풀어 오를 수 있다. 기온이 내려가면 우리 몸의 피부와 근육이 수축한다. 이 때문에 항문 주변 혈관 압력이 높아지고 변을 보다가 출혈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치핵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겨울철 과한 음주를 삼가야 한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것도 피해야 한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 등을 보는 것은 치핵을 유발하거나 증상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나쁜 습관이다. 배변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변을 보기 힘들다면 화장실에서 나왔다가 변의가 느껴질 때 다시 화장실을 찾는 것이 좋다. 강상희 고려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항문 주위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은 치핵으로 인한 통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배변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지켜 항문의 압력을 낮춰야 한다. 변비에 걸리지 않도록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과 물을 섭취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해 장에 적당한 자극을 주는 것도 좋다. 잦은 관장을 피하는 것도 도움된다.
몸살인 줄 알고 방치하는 항문 농양
항문 질환 중에는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치료가 늦어지는 질환도 있다. 항문 농양이 대표적이다. 치질은 항문 통증과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환자가 쉽게 항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항문 농양은 초기 증상이 몸살이나 피부 질환과 비슷해 일반 내과나 피부과를 찾는 환자가 많다. 성종제 민병원 항문센터 원장은 “항문 농양은 염증성 질환으로 발열이나 오한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항문 질환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감기몸살 약을 복용하거나 피부질환 약을 환부에 바르는 환자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몸살 증상과 함께 항문 주위에 묵직한 느낌이 있다면 항문 농양을 의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문 농양은 항문 주위 염증 때문에 고름이 생기는 질환이다. 선천적으로 항문 구조에 문제가 있어 병이 생기는 환자가 많지만 잦은 설사, 면역력 저하, 과도한 음주 때문에 후천적으로 생기는 환자도 많다. 초기에는 큰 불편을 호소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기가 잡히고 심하게 붓기도 한다. 염증 부분이 터져 고름이 나오면 통증이 줄지만 쉽게 재발한다.
항문 농양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농양을 빼는 치료를 한다. 항문 농양이 만성화된 환자의 50% 정도는 치루로 이어지기도 한다. 치루가 생기면 통증이 심해지고 배변에 어려움을 겪는다.
항문 농양을 예방하려면 스트레스를 줄이고 규칙적 생활 습관을 유지해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 과음을 자제해 설사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 원장은 “스트레스가 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항문 질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항문이 붓고 아프거나 가려움, 종기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의료진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도움말 : 강상희 고려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성종제 민병원 항문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