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폭스바겐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한국

입력 2015-12-16 17:58
수입차 맹목적 선호하는 20~30대
값 싸다면 기업 부도덕성 나 몰라라
천민 소비의식, 시장 건전성 해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폭스바겐 차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이다. 연비 조작 사건으로 소비자들은 물론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기업이다. 그런 회사의 차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사건 전보다 더 팔려나가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말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폭스바겐은 지난달 한국 진출 이후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했다. 환경부가 이 회사의 디젤차 6개 차종에서 배출가스 눈속임 장치를 확인하고 리콜 명령과 함께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팩트는 판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선납금 없는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전대미문의 마케팅에 소형차 고객인 젊은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를 기만한 기업이다. 기름이 훨씬 더 먹힌다는 건 둘째다. 지금도 수백만대의 차량이 기준보다 몇 십배 많은 질소산화물을 쏟아내고 있다. 모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폭스바겐의 대대적인 판촉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할인율이 두 자릿수다. 그런데도 지난달 판매는 24.7% 감소했다. 일본은 더求? 감소율이 31.8%나 된다. 무상 수리 기간을 5년으로 늘렸지만 말이다. 일본은 폭스바겐이 디젤차가 아니라 휘발유 차만 파는 시장이다. 대단한 일본 소비자들이다.

그런데 한국 소비자들은 뭔가. 기업의 도덕성은 관심 밖이다. 그저 싸게 팔면 살 뿐이다. 폭스바겐의 폭발적 판매 증가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현재 판매 중인 차량 일부도 조사 대상이다. 그래도 관계없다. 소비자 윤리라는 개념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인들의 수입차에 대한 충성도는 대단하다. 여전히 부의 상징이고 품질과 안전의 대명사다. 가격이 동급 국산 차량에 비해 최고 3배나 비싸고, 수리비가 최고 7배나 비싸도 수입차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국민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내 폭발적인 폭스바겐 판매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렇게 빈정댔다.

그래서인가. 폭스바겐 사태에 항의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대기업 빌딩 앞이 시위꾼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벌가 집안싸움에, 대기업 영업사원의 막말 하나에 대규모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소비자들이 말이다.

브랜드가 좋아 산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젠 수입차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한국 차의 품질이 못 미더워 수입차를 산다지만 국산차 품질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품질평가 분야에서 최고 권위라는 미국의 JD파워는 올해 품질 순위에서 기아차를 2위에, 현대차를 4위에 올려놓았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국산차 애프터서비스가 엉망이어서 수입차를 산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 애프터서비스를 받아봤는지 모르겠다. 수입차 구매자 가운데 상당수가 생애 처음으로 차를 사는 고객이라는데 말이다. 사실이다. 수입차 구매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20~30대다. 올해 수입차 판매량이 23만대를 넘는다니 적어도 11만명의 20~30대가 수입차를 샀다. 20대만 따져도 1만5000명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국산차 애프터서비스 타령인가.

수입차를 사서 어깨에 힘을 주고 싶은 젊은이들이다. 자신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부모에게 떼를 써서라도 사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 수입차를 리스를 활용해 몰다가 포기한 20~30대가 낸 중도해지 수수료가 지난 5년간 무려 2000억원이다.

한 손엔 수입차 핸들을, 한 손엔 외국산 스마트폰과 명품 백을 들어야 얼굴이 선다. 그리고 외치느니 ‘헬조선’이다. 스스로 일자리를 박차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치에서 유권자의 선택에 의하여 대표자가 결정되듯 경제에서도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기업의 생산 활동이 좌우된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가 갖는 힘은 그래서 강하고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소비자 주권이다. 소비자 주권을 포기하고 이기심만 창궐한 시장이 건전할 리 없다.

환경이 어떻건, 기업의 도덕성이 어떻건, 나라 경제가 어떻건, 내 알 바 아니라는 소비자들이 이 정도다. 폭스바겐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소식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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