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목표 2%·잠재성장률 3% 초반으로 낮춰
금리 올리면 저성장, 내리면 가계부채가 부담
기재부 "체감 성장률 높이기 위해 모든 수단 동원"
[ 김유미/이승우 기자 ]
한국은행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15~16일(한국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을 전후로 글로벌 통화정책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미국이 돈줄을 죈 반면 유럽과 일본 등은 돈풀기에 여념이 없다. 금융시장 여파를 감안한다면 한국도 언젠가 미국처럼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저성장·저물가가 고질병처럼 자리잡자 16일 한은은 새 물가안정목표를 연 2%로 낮췄다. 잠재성장률 역시 종전 3%대 중반에서 초반인 3.0~3.2%로 낮춰 추산했다. 구조적인 저성장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성장률을 관리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로선 비상이 걸렸다. 내년 거시정책 기조도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저물가 탈출’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의 이 같은 의지가 한은엔 금리 인하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리 인상 ‘선택의 순간’ 오나
지난해 4월 이주열 한은 총재가 취임한 뒤 기준금리는 네 차례 내렸다. 현 기준금리는 연 1.5%로 사상 최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하면서 국내 시장에도 금융 불안을 키운다. 이미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의 순매도가 이어졌다. 파장을 줄이려면 한은 역시 언젠가 금리를 끌어올려야 한다.
송두한 NH농협지주 금융센터장은 “국내 시장금리가 미국 따라 바로 오를지도 모른다”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문제는 국내 경기가 미국만큼 좋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수출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저물가에 비상 걸린 정부
성장률을 높여야 하는 정부로선 비상이 걸렸다. 기재부는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실질성장률(3.1%) 외에 경상성장률(4.5%) 전망치를 함께 제시했다. 그러면서 실질성장률 못지않게 경상성장률을 중요한 지표로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다. 높은 경상성장률을 달성하려면 물가 또한 어느 수준 이상이 돼야 한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서라도 국민이 체감하는 경상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게 기재부 시각이다.
인플레를 유발하려면 통화정책은 완화기조(금리 인하)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재부의 경상성장률 관리 방침은 사실상 한은에 금리 인하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씨티은행과 바클레이즈 등은 내년 상반기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두 차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 물가목표를 통해 체감 성장률을 높일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목표 2%로 현실화했지만
한은도 저물가를 주시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2016~2018년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소비자물가상승률 2%(전년 동기 대비)’로 결정했다. 2013~2015년 목표치인 2.5~3.5%보다 낮췄다. 고령화와 수요 부진, 국내 가격경쟁 심화 등으로 과거와 같은 고물가는 어렵다는 인식에서다.
한은이 예상하는 내년 물가상승률은 1.7%다. 이를 2%로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은 관계자는 “지금 추세라면 물가상승률이 2017년부터 2% 안팎으로 오를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의 저물가엔 유가 하락 등 일시적 요인이 큰 만큼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한은 일부에선 저물가 때문에 금리 인상을 미뤄선 안 된다는 고민도 있다. 2004년 6월 미국이 금리를 올린 뒤 한은은 그해 두 번 금리를 내렸다. 인상은 한참 뒤인 2005년 10월에야 이뤄졌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당시 저금리로 부동산 거품과 기업부채 문제가 커졌고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다”며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감안하면 금리 인상을 과거보다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김유미/이승우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