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유예 최종 입장 아냐"…논란 확산되자 불끄기 급급
기업지배구조·재산상속 등 지르고보는 정책 발표 되풀이
"법무부에 검사 파견 재고해야"
[ 김병일 기자 ] 지난 3일 ‘2017년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 발표로 법조계를 뒤흔들어 놓은 법무부가 사실상 입장을 철회할 조짐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집단자퇴서를 제출하고 변호사시험마저 파행 조짐을 보이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앙금은 여전하다. 로스쿨 학생들은 “사법시험 폐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달라”며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분위기다. 법무부가 ‘치고 빠지기식’ 정책 발표를 되풀이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법무부, ‘사시 폐지 유예’ 꼬리 내려
법무부 관계자는 15일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차례 밝힌 대로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은 법무부의 최종 입장이 아니다”며 “앞으로 로스쿨협의회와 대법원, 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법조인 양성 방안을 놓고 국회에서 논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4~8일 변호사시험은 차질없이 치러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가 앞장서서 사시 폐지 유예를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출제와 응시가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로스쿨협의회 등과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다.
로스쿨협의회 측도 로스쿨 원장 및 학생 대표들과 잇달아 회동하고 감정적 대응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협의회 측 성명서는 법무부를 비롯해 로스쿨 등 이해당사자들의 ‘출구전략’의 일환이 될 전망이다. 로스쿨 학생들은 그러나 여전히 법무부의 속내에 대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차관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4년 유예 방안’이 언제 되살아날지 몰라서다. 이철희 전국로스쿨학생협의회장(충북대 로스쿨 학생회장)은 “사시가 없어지게 됐는데 왜 상생을 위해 협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학생들에게 사태 수습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법무부에 검사파견 재검토 필요
법무부는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나 재산상속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불쑥 내뱉었다가 여론이 악화되면 도로 접는 일을 반복했다. 법무부는 2년 전 생존 배우자에게 총 상속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속분을 ‘선취분’ 명목으로 먼저 취득하게 한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내놨다. 법무부 산하 상속법개정위원회의 법 개정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나라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입법예고도 하기 전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렸다. 황혼 재혼 등에 따른 가족 간 불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특히 기업은 가업승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2013년 7월에는 상법 개정안으로 재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 소액주주들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등을 도입한다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기업 지배구조에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킬 사안이었음에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일사천리로 입법예고까지 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기업 옥죄기며 국내 기업을 노리는 외국 기업만 득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발을 뺐다.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회사에 변호사 등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한 준법지원인 제도 역시 실적이 미미해 실패작으로 꼽힌다.
법무부의 잇단 ‘헛발질’에는 이유가 있다. 검사들의 법무부 근무기간이 짧아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재임기간이 평검사는 2~3년, 부장검사 이상 간부급은 1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법무 정책과 교정, 출입국관리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검사 파견을 재검토하는 등 법무부 체제를 재편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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