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스모그 강타한 중국…'환경이냐, 성장이냐 딜레마'
전력생산 79% 석탄연료 의존
산업화 부작용…자동차·공장매연 심각
베이징 등 사상 첫 '적색경보'
리커창 총리 '스모그와 전쟁' 선포
오염물질 배출기업 처벌강도 높여
WSJ "중국, 실물경제 둔화 우려…굴뚝 제조업 구조조정 쉽지 않을 것"
[ 베이징=김동윤 기자 ]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작년 1월 말 베이징 서쪽 산시성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중학교 1학년 소녀가 편지 한 통을 건넸다. 편지에는 “스모그를 줄여 중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리 총리는 친필로 쓴 답장에서 “녹색발전의 길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언론은 이를 ‘녹색약속’이라고 불렀다.
이후 중국 정부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각종 대책을 동원해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최악의 스모그가 베이징 등 수도권 지역을 강타했고, 중국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최고 스모그 경보인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리 총리의 ‘녹색약속’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스모그 문제가 더욱 악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스모그
중국에서 스모그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2013년 1월부터다. 초미세먼지를 뜻하는 PM2.5(지름 2.5㎛ 이하의 먼지) 농도가 ㎥당 993㎍(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이때부터 중국에는 ‘스모그 왕국’이란 오명이 덧씌워졌다.
스모그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자 스모그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결과도 속속 발표됐다. 중국에서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 중국공학원 회원은 “PM2.5 농도가 ㎥당 10㎍ 증가할 때마다 폐암에 걸릴 확률은 25~30%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스모그는 기본적으로 산업화 진전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 수도 런던도 1950년대 심각한 스모그가 발생해 호흡기 질병 발생률이 급상승한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OECD를 제외한 국가에서 1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 인구 중 70%가 스모그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다른 국가보다 유독 스모그 문제가 심각한 것은 석탄을 주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 내 석탄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13.3%이지만 생산량은 49.5%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전력생산의 약 79%가 석탄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역대 최강’ 환경보호법으로도 역부족
작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 총리는 “중국은 과거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처럼 스모그에 대해서도 전쟁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중국 정부는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지난 1월부터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신환경보호법을 시행했다. 기존 환경보호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기업의 환경 관련 위법행위를 횟수가 아니라 일수를 기준으로 처벌하고 처벌의 상한선을 없애는 등 처벌 강도를 크게 높였다. 또 오염물질 배출기업과 오염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환경 오염 관련 공익소송 제도도 도입했다.
중국 공산당도 스모그 방지를 위해 직접 나섰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5월 ‘생태문명 건설에 관한 의견’이란 제목의 통지문을 통해 “공산당 지도자와 간부들이 임기 중에 자원 및 생태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기록으로 남겨 평생 책임을 추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경보호와 관련해 ‘종신 책임제’를 시행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단위 기준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감축하고, 청정에너지 비중도 15%가량 높이기로 했다.
◆딜레마에 처한 중국 경제
중국 정부가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모그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친다허 전 중국 국가기상국장은 지난 3월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중국은 앞으로 10년 내에도 스모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중국 정부가 전체 전력생산에서 청정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20% 안팎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스모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오슬로 국제기후환경센터도 최근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 공동연구에서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0.6% 줄었다”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세로 돌아서더라도 중국의 스모그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주된 이유로는 역시 중국의 높은 석탄 의존도를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스모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소비 비중이 높은 중화학 공업 비중을 낮추고, 태양광 풍력 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전체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중국의 실물 경기 둔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수도권에 사상 처음으로 ‘적색경보’가 발령되면서 30년간 고도성장을 지속해온 중국 경제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WSJ는 “스모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실물경기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이 스모그 문제 해결을 위한 일시적인 성장률 하락을 감내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 兼?김동윤 특파원/임근호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