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도 선진국 학생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15-12-11 07:00
경영학 카페

대학입시 '병목구간'서 속도 못내고 공회전만…
지쳐가는 한국 학생들

'성능 개선'에만 매달려 '연비' 높이려는 교육제도

'내비게이션'을 활용한 유럽의 교육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연비 개선

병목 줄여야 창의성 살듯 규제 풀어야 경제도 성장


최근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을 만났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지원자의 스펙은 날로 좋아지고 있지만 정작 뽑을 만한 인재가 부족하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문제점은 교육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교육에는 대학입시라는 병목구간이 있다. 병목구간은 도로가 좁아지면서 차량 흐름에 방해를 주는 지점이다. 차가 아무리 좋아도 속도를 낼 수 없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입시라는 병목구간에서 공회전하며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병목현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동차업계에서 답을 찾아보자. 자동차업계는 오래전부터 연료 효율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연비를 개선하는 동시에 환경까지 챙겨야 한다. 결국 연비를 측정할 때는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끄는 꼼수까지 동원하게 된다.

자동차 연비를 개선하는 다른 방식은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방식은 기계식 연비개선은 아니다. 하지만 덜 막히는 길로 운전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경제속도도 낼 수 있으니 결국 연비를 개선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교육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성능 개선을 통해 연비를 끌어올리는 방식의 교육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학생들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로 내몰린다. 개인의 적성과 특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반면 유럽의 교육 시스템은 내비게이션을 활용한 연비개선 방식에 가깝다. 유럽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에게 한 곳으로 몰리지 말고, 덜 막히는 길로 가라고 안내해주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한국 학생 못지 않게 공부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방과후에 취미를 즐기며 여유를 누린다. 한국처럼 다수 학생이 대학 진학이라는 병목구간에서 정체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학생은 대학으로, 손재주가 뛰어난 학생은 기술직으로 유도되는 식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년 과정을 마치면 어떤 종류의 상급학교로 진학할지 정한다. 담임교사가 학생의 적성과 학업능력을 고려해 학교를 추천하는데, 상급학교 종류에 따라 인생의 길이 달라진다. 9년제 김나지움을 졸업하는 학생은 대체로 대학에 진학한다. 6년제 레알슐레 졸업생은 대학에 가지 못하지만 사무직, 행정직으로 일할 수 있다. 5년제 하웁트슐레 졸업생은 기술직 등의 직업을 구한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부모들은 교사의 조언을 무시하고서라도 자녀를 김나지움으로 진학시킬 것이다. 하지만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독일에선 학부모가 교사의 조언을 대체로 따른다. 대학입시라는 병목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독일 학생들은 20대 초반에 기술직으로 경력을 시작해 30세면 숙련공, 40세면 전문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다수의 학생이 대학 진학을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대학을 마치면 전공과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를 위해 또 공부한다. 이러다 보니 다수의 청년은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에서 경력을 시작한다.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졌으니 당연히 경력개발 수준은 독일의 청년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재능이 뛰어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가 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많은 학생이 대학입시라는 병목구간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직업의 귀천을 심하게 따진다. 부모는 자녀에게 ‘대학을 나와 펜대를 굴리면서 살라’고 말한다. 직업에 따라 수입도, 사회적 대우도 크게 다르다. 경제적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고 여기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병목에 묶어두면 기득권층은 이익을 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발전의 속도가 떨어진다. 그렇게 해서는 창조경제를 이루기 어렵다.

창조경제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가 자생적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의 생각을 규제하고 시스템으로 통제하려 들면 반드시 병목이 발생한다. 규제 완화는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한국 사회는 더 많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병목을 줄여야 차가 속도를 내는 것처럼, 규제를 풀어야만 창의성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김용성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