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아' 52회 무역의 날] "무역 1조弗 회복의 열쇠, 중견·중소기업들이 쥐고 있다"

입력 2015-12-07 14:44
수출확대 방안 좌담회

세계 경기회복 부진·내수 침체 등 '악재', 올 교역량 9700억弗…무역강국 지위 흔들
조선·철강·차 등 제조업 위기감도 커져…대기업 중심 수출 증대만으론 '역부족'
중국, 내수중심 정책…소비재산업 기회로
인력난' 중기, 외국인 고용 비율 높여야
내년 수출기업 지원 3000곳으로 확대…중견 강소기업 육성 '경제허리' 키워야


[ 김순신 기자 ]
쾌속질주하던 한국 무역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글로벌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데다 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 전쟁’에 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또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가공무역 중심의 산업정책을 내수시장 육성으로 바꾸고 있다.

올해 무역 강국의 상징인 ‘무역 규모 1조달러’ 클럽의 지위도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한국이 5320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4400억달러 안팎을 수입해 9720억달러 수준의 교역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이후 5년 만에 무역액 1조달러 달성에 실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무역의 앞날에 험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기회복 부진, 중국 등 신흥국 부상과 경쟁 심화, 엔저(低) 등 불확실한 환율 흐름 등 난제가 쌓여 있지만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 수출 선전, 품목 다변화, 수출 물량 증가세 양호 등이 있어 올해 한국은 사상 처음 세계 수출 6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는 ‘제52회 무역의 날’을 맞아 국내 기업의 수출 확대 방안을 찾아보기 위한 좌담회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었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 박인배 일진글로벌 대표, 양영대 해성아이다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김 부회장이 사회를 봤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내년 글로벌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계속 수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규 시장 개척과 강소기업의 꾸준한 품질 개선, 수출기업 지원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사회)=올해 무역 성과를 평가해 주십시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세계 교역량이 전년보다 10% 이상 줄어들면서 한국 무역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도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두 자릿수를 웃돌았고, 수출 규모 순위도 프랑스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세계 6위에 올랐습니다.

김 부회장=한국의 주력 업종 가운데 휴대폰과 반도체를 뺀 조선·철강·자동차 등 대부분 업종에서 수출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심장’인 제조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지난해 33.8%였던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은 35.7%로 상승했습니다.

▷사회=기업들이 느끼는 해외 시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박인배 일진글로벌 대표=자동차 부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주요 수출 지역인 유럽의 경제가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기술력을 확보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과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 강화도 앞으로 수출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사회=지난해보다 수출이 부진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차관=수출 감소는 세계 경제 및 교역 둔화, 유가 하락, 엔·유로화 약세 등 경기적 요인과 더불어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주력 산업의 해외 생산 확대와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김 부회장=맞는 말입니다. 특히 중국이 내수 중심 정책을 펼치면서 가공무역에 의존하던 한국 기업의 수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2005년 41.6%에 달했던 중국의 가공무역 수입 비중은 올 1~10월 26.6%로 떨어졌습니다. 더불어 고임금, 경직된 노동시장 등을 이유로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수출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회=대(對)중국 수출을 살리기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이 차관=소비재산업을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화장품, 소형 가전 등 유망 소비재 상품을 폭넓게 발굴해 수출 상품화 및 痴?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김 부회장=우선 중소기업 수출을 늘리기 위해 총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난 3월 설립된 차이나데스크를 내실화하고 중국 서부지방을 공략하기 위해 내년 1월 청두에 지부를 세울 계획입니다.

▷사회=업체들은 수출을 늘릴 묘안이 있습니까.

양영대 해성아이다 대표=세계 곳곳에 수출하는 가죽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죽 제품은 이탈리아가 강합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양질의 가죽을 만들고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처를 찾고 있습니다. 올 들어 1~10월 회사 매출의 97%를 수출에서 올리고 있는데 환율이 크게 변하면 수출 기업이 힘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박 대표=수출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로 사정이 열악한 신흥국을 공략하기 위해 강도가 높은 베어링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품질 경쟁력이 있어야 수출을 늘릴 수 있습니다. 제품 개발을 위한 우수 인력이 필요한데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사회=고용시장 왜곡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뜻입니까.

양 대표=기업 경쟁력이 수출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입니다. 중견기업은 인력난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국은 업종별로 외국인 근로자 고용 비율을 다르게 정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모든 업종에서 일률적으로 총직원의 10%만 고용할 수 있습니다.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 경쟁력까지 저해하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올해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양 대표=TPP 가입 불발은 국내 수출업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TPP에는 원산지 규정이 있습니다. 역내에서 35%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무관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TPP 가입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간재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공동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박 대표=일본 업체들이 TPP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한국 업체만 누리던 관세(2.5%) 면제 혜택을 일본 기업도 똑같이 받으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회사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정부는 대응책이 있습니까.

이 차관=TPP 등 메가 FTA 가입은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세운 신(新)FTA 추진 전략을 통해 메가 FTA에 대한 기본 전략과 방향을 수립하겠습니다.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TPP 참여를 검토하는 단계입니다.

▷사회=현행 수출기업지원제도는 어떻습니까.

김 부회장=한국엔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를 각 업종과 기업에 맞게 맞춤형으로 일원화해주는 컨트롤타워가 없습니다. 기업의 수요에 맞途?지원 시스템을 좀 더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 대표=중소기업에 집중된 지원체계가 문제입니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립니다. 각종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중견기업 정도로 기업이 성장해야 연구개발(R&D)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깁니다. 독일을 봐도 경쟁력 있는 강소기업은 모두 중견기업입니다. 중견기업을 키워서 경제의 허리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내년에는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까.

김 부회장=내년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중국의 성장둔화 등 위험 요인이 있지만,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회복되고 국제 유가도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수출은 5440억달러, 수입은 4610억달러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유가가 안정세를 찾으면 올해 크게 부진했던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 차관=무역 1조달러 회복의 열쇠는 중견·중소기업이 쥐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수출 증대도 중요하지만 한국 수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중소·중견기업 수출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는 내수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를 돕기 위해 내년도 수출 기업화 지원 회사를 3000개로 확대하고, KOTRA 지방지원단을 5개에서 9개로 늘릴 생각입니다. 더불어 ‘제조업 혁신 3.0 전략’의 하나로 중소·중견기업에 스마트공장을 보급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돕는다는 방침입니다.

정리=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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