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그들이 사는 법
[ 김현석 기자 ]
최모 삼성전자 전무는 매일 새벽 5시에 잠에서 깬다. 삼성그룹이 4년 전 시행한 ‘임원 6시 반 출근’에 맞추기 위해서다. 곧바로 회사로 향한 그는 사내 헬스클럽에서 30~40분간 운동한다. “체력이 있어야만 회사 생활을 견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샤워를 마친 최 전무는 오전 6시20분께 사무실에 도착, 서류를 들여다본 뒤 임원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는 주제를 바꿔가며 이어진다. 서초사옥으로 불려가기도 하고 수원 디지털시티 내 사업부장 방에서도 열린다.
오후 7시쯤 사무실에서 나와 직원들과 회식을 한 그는 밤 10시쯤 집에 도착해 출장 준비를 한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으로 가야해서다. 일정은 1박3일. 14시간 반 비행 후 뉴욕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한 그는 현지 고객들과 저녁을 먹고 다음날 오전 영업법인에서 회의한 뒤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출장 60여시간 중 비행시간이 30시간이었다.
다음날도 새벽 5시면 일어나야 한다.
대기업 임원은 ‘샐러리맨의 꿈’이다. 군대와 비교해 ‘별’을 달았다고도 한다. 월급도 많이 오른다. 하지만 정작 임원들은 스스로를 ‘임시 직원’이라고 부른다. 퇴직금을 받고 다시 시작하는 계약직 임원 생활이 ‘파리 목숨’이어서다.
최근엔 더 그렇다.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하자 기업들은 임원 수 감축에 한창이다. 매출이 늘지 않는 한 이익을 늘리는 법은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서다. 삼성은 지난 4일 2700여명 임원 중 400여명을 내보냈다. 새로 임원으로 승진시킨 사람은 197명. 임원 자리가 200개 이상 줄었다. 삼성뿐이 아니다. 최근 실적이 악화한 포스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그룹 동부그룹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잇따른 사업재편과 계열사 매각으로 날벼락을 맞는 임원이 많다. 이 탓에 연말 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이들도 불안하다. 회사가 다른 곳에 팔리면 자리 보전이 힘들다. 최근 삼성에서 한화로 팔려나간 한화테크윈에선 임원 일부가 매각 전후 회사를 떠나야 했던 반면 임원이 아닌 부장급은 ‘5년 고용 보장’을 받기도 했다.
임원들을 향한 실적 압박은 매년 거세지고 있다. 삼성이 6시 반 출근을 시작하면서 대부분 대기업 임원은 오전 7시~7시 반이면 회사에 나온다.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새벽 2시에 이메일을 보내고서는 새벽 6시쯤 “왜 답이 없느냐”고 꾸짖는 상사 때문이다.
실적 목표는 매년 높아져 쉴 수가 없다. 한 삼성 임원은 피로가 누적된 탓에 대상포진에 걸렸다. “1주일을 쉬어야 낫는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해외 전시회 준비 등으로 계속 일했더니 아예 고질병이 됐다. 조금만 피곤하면 증상이 재발한다.
한 임원은 “요즘같이 임원들이 대량으로 잘려나가는 시기엔 밤에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