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7년동안 원자현미경 한 우물' 박상일 파크시스템 대표의 상장 '승부수'

입력 2015-12-03 09:17
[ 박희진 기자 ]
1987년 미국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한국인 유학생은 원자현미경 전문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타국에서 겁없이 벤처 출사표를 던진 그에게 한국과 미국 지인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교수와 학생 누구나 호시탐탐 사업 기회를 노립니다. 미국에서 지도교수님께 원자현미경 사업계획을 말씀드리자 아이디어도 좋고 시기도 적절하다며 크게 독려해주셨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는 핀잔이 돌아왔죠."

응원과 걱정 속에 1988년 세계 최초로 원자현미경 상업화에 성공한 초보 벤처사업가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파크시스템를 설립한다. 한국에서 벤처 인생 2막을 쓰고 있는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57·사진)는 오는 17일 회사의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박 대표는 옷깃을 여미며 "기업공개(IPO) 한파가 무섭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날씨만큼 차갑게 얼어붙은 공모주(株)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혼나면서 시작한 사업…"10년 전 상장 준비에 '쓴맛'"

박 대표는 세계 최초로 원자현미경을 개발한 켈빈 퀘이트 스탠퍼드대 교수의 연구실 출신이다. 원자현미경이 개발되고 기술 수요가 급증하던 당시 상황을 지켜보며 그는 사업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졸업한 서울대 물리학과로부터 교수 채용을 제안 받은 때도 그 즈음이었다.

"한국에 잠깐 귀국해서 사업 이야기를 꺼내고 야단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으면 대학 교수나 국립연구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호되게 혼나고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하긴 해야겠더라고요. 수요도 있고 기술도 개발된 상황에서 사업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죠."

대학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박 대표는 방 2개의 월세집으로 이사해 방 하나를 사무실로, 차고를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파크시스템스 전신격인 PSI의 시작이었다. 무턱대고 뛰어든 사업은 회사 설립 6개월 만에 운좋게 기회를 얻는다. 회사를 소개한 신문 기사를 본 한 개인투자자가 PSI에 12만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9년동안 키워온 회사를 매각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 대표는 1997년 지금의 파크시스템스를 세운다. 현재 파크시스템스는 국내 유일의 원자현미경 제조업체다.

"한국이 더 힘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경험도 있고 모은 돈도 있으니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죠. 당시 국내에서는 벤처붐이 꺼지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은 상황었습니다. 원리 원칙보다 연줄이 중요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사업 초기 어려움을 딛고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박대표는 일찍이 상장을 준비했다. 그는 10년전 처음 파크시스템스의 상장을 추진했던 때를 떠올리며 감회가 새롭다고 털어놨다. 당시에도 기술력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실적이 발목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후 박 대표는 자회사인 해외법인들의 실적 개선에 주력하며 틈틈이 상장 시기를 저울질했다. 당시 한국거래소가 지적했던 미국과 일본 해외법인의 실적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올해 파크시스템스의 영업이익을 29억원으로 예상하며, 전년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현미경 기술력 입증…해외 판매망 늘린다

회사 설립 17년 만인 올해 파크시스템스는 기술특례 상장심사를 통과하면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다. 바이오 업종을 제외하고 기술특례로 상장하는 회사는 지난해 항공부품 제조업체 아스트 이후 파크시스템스가 두 번째다. 특히 파크시스템스는 평가기관 두 곳 모두에서 'AA'를 받으며 높은 기술력을 입증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는 아직도 원자현민경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미경과 같은 계측장비는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고 진입장벽도 높습니다. 파크시스템스의 원자현민경 기술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선진국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27년동안 한 우물을 판 박 대표는 원자현미경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자신의 성인 '박(Park)'을 넣어 지은 회사명 파크시스템스에서는 그만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박 대표는 최근 해외 마케팅을 강화로 기술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 인지도 역시 올라가고 있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이번 상장을 통해 모인 공모자금도 해외 판매망 확대에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는 현지법인을 상장 후 유럽과 중국 인도 등으로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사업을 하면서 회사도 '성장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내실을 착실히 다지며 조금 늦어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공모가도 무리하게 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기술력과 기업가치를 있는 그대로 적절히 평가받고 향후 조금씩 더 성장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 회사가 되겠습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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