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챗 부작용'에 속 썩는 조선족

입력 2015-12-02 15:28
수정 2015-12-02 17:33

(황정환 지식사회부 수습기자) “위챗을 쓰고 나서 조선족 모임 횟수가 배로 늘어난 것 같아요. 중국에서 못만나던 가족이나 지인들을 한국에서 다 만납니다. 그런데 모임이 늘어나니 그만큼 부조금 낼 일도 늘어나 걱정이에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족 김선자 씨(가명)의 위챗에는 20명 이상이 속해있는 단체 대화방만 5개가 넘습니다. 고향인 중국 연변의 같은 동네 친구 모임에서부터 비슷한 시기 한국에 넘어와 어울렸던 일종의 동기모임까지 다양합니다.

김씨는 “예전에는 모임 한번 하려면 연락 돌리는 번거로워 약속 한번 잡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단체 대화방에 투표를 올릴 수도 있고 몇 십명이 한꺼번에 이야기를 할 수 있다보니 전보다 모임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 대부분은 중국의 텐센트사가 내놓은 스마트폰 메신저 위챗(wechat)을 씁니다. 중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과도 쉽게 연락할 수 있고 대부분의 단체 약속이 위챗 대화방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위챗을 통한 모임이 늘어나면서 서울 시내 조선족 밀집 상권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조선족 최대 상권은 가리봉동이었지만 이제는 대림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림동의 급성장은 스마트폰이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과 묘하게 겹칩니다. 대림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다들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모임이 늘어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통이 편리하고 밝은 분위기의 대림동으로 몰렸다”고 말합니다.

주말이면 대림동의 중국인 거리 음식점은 각종 모임을 갖는 조선족들로 가득 찹니다. 중국 향토음식인 마라탕을 파는 한 음식점은 점심에만 단체 예약이 10개가 넘습니다. 이처럼 모임이 많은 것은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내 조선족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일반적인 경조사 뿐 아니라 지인의 창업이나 비자기간만료로 인한 귀국, 심지어 지인의 제삿날에도 모임을 갖곤 합니다.

문제는 늘어난 모임만큼 부조금도 늘었다는 점입니다. 언제부턴가 조선족 사회 내에서 부조금 액수는 기본 10만원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지인의 중국 귀국에도 부조금으로 10만원을 내니 친한 사람들의 경조사에는 그 이상을 부조금으로 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버는 돈 대부분을 부조금으로 써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김 씨만 해도 이번 주에만 부조금으로 50만원을 썼습니다.

이런 문화가 형성된 이유는 조선족 대부분이 같은 조선족을 고객으로 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사업분야는 주로 양꼬치나 중국 향토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비자 취득, 납세 등 행정업무를 처리해주는 행정사, 중국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에 국한돼 있습니다. 대림동에만 수백개의 식당과 수십개의 여행사가 경쟁하고 있는데, 단체 손님들은 대부분 지인이나 지인의 추천을 통해 옵니다. 조선족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부조금을 내는 이유입니다.

물론 조선족 사회 내에서도 이런 부조문화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 되지않는 소득 중 부조금으로 들어가는 비율이 너무 높다보니 부조금 낸 것이 아까워서 이런 저런 이유로 모임을 만들고 부조금을 회수하려는 모습까지 나타난다고 합니다. 위챗 등 정보기술(IT)의 발전이 그리운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지만 이제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는 건데요. 조선족 특유의 문화와 첨단기술이 만나면서 생겨난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끝)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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