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오피스 -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
유럽 대신 북미 공략…레이싱 대신 히어로즈 후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유학 대신 현장 택한 2세 경영인…스노보드로 다진 친화력 무장
적극 소통 '스마일맨' 별명도…창사 이래 23년간 파업 없어
선택과 집중으로 '반란'
"국내서 승부 보자" 1조 투자…창녕공장 품질 경쟁력 높여
북미 수출·야구 마케팅 주력…5년새 매출 두배 '나홀로 성장'
[ 정인설 기자 ]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은 2001년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 내에선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아들이니 당연히 재무나 전략 같은 힘 있는 부서에서 일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강 사장의 첫 근무지는 경남 양산공장. 현장 경험이 있어야 회사를 알 수 있다는 강 회장의 뜻에 강 사장이 동의해서다.
양산공장 직원들은 ‘오너 2세랑 일하니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이 많은 간부급 직원들이 그랬다. 당시 30세였던 강 사장의 직책은 과장이었지만 미래의 회장을 여느 과장으로만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처음엔 무반응이거나 마지못한 답례로 일관하던 직원들이 몇 달이 지나니 웃으며 강 사장의 인사를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강 사장은 직원 사이에서 ‘스마일 맨’으로 통했다.
타고난 낙천적 기질
강 사장이 웃음 다음으로 택한 건 칭찬이었다. ‘호찬(鎬讚)’이라는 본인의 이름을 ‘빛나게 칭찬하자’는 뜻으로 해석하며 직원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칭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칭찬 릴레이를 시작했다. 칭찬함을 만들어 직원들이 직접 투표해 모범 사원을 뽑도록 했다.
휴가를 떠나는 직원에게는 휴가지에서 읽어보라며 꼭 책을 선물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송년회나 직원 생일잔치에 가급적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대학 시절부터 스노보드 아마추어 선수로 뛴 경험을 살려 사내 스키 동호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적극적인 스킨십은 노사 관계에서 힘을 발휘했다. 노조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노조 집행부를 만나고 자주 대화했다. 노조가 요구하기 전에 직원 복지시설을 갖추는 데 힘을 쏟았다. 사업장이 있는 서울과 경남 양산, 창녕 등에 사원 아파트와 각종 편의시설을 지었다. 이런 문화 덕에 넥센타이어는 창사 이래 23년간 무분규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과 2006년에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2011년엔 노사 상생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노사 갈등으로 지난 8월 39일간 장기 파업을 벌인 금호타이어나 전면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간 한국타이어와는 대조적이다.
유학 경험 없는 2세 경영인
강 사장이 다른 모습은 이뿐만 아니다. 강 사장은 여느 대기업 오너 경영자와 달리 해외 유학을 가지 않았다. 1999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게 끝이다. 해외 경영대학원(MBA)을 나온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2세 경영자들의 프로필과 확연히 다르다.
넥센타이어는 공장 입지도 달랐다. 국내 타이어업체들이 너도나도 해외에 공장을 지을 때 넥센타이어는 2009년 경남 창녕에 새 공장을 지었다. 당시 땅값도 비싸고 인건비도 많이 드니 밖으로 나가자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연간 매출보다 많은 1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하자 노조까지 들고 일어났다. 강 사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회상했다. 그래도 그는 국내 투자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강 사장은 “돈이 더 들더라도 회사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야 하고 그러려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승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2012년 완공한 창녕공장은 세계 최고의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거래처 사람이 이 공장을 보기만 하면 타이어를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이어만 데리고 오면 거래 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강 사장은 “타이어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은 공장에서 나는 고무 냄새만 맡아봐도 타이어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며 “글로벌 완성차업체 사람들이 창녕공장에 방문한 뒤 대부분 주문량을 늘렸다”고 했다. 실제 창녕공장을 가동한 뒤 넥센타이어는 폭스바겐과 크라이슬러, 피아트, 미쓰비시 같은 업체들로부터 타이어 주문을 받았다.
넥센 히어로즈를 3년 더 후원 求?과정에서도 많은 반대에 부닥쳤다. 사내에선 연간 100억원 정도의 돈을 해외 마케팅에 투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의리를 택했다. 그는 “이익 창출과 마케팅 효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소비자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경영 실적도 우등생
넥센타이어는 해외 사업에서도 반대로 갔다.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는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지만 넥센타이어는 칭다오공장 외에 중국 생산 라인을 최소화했다. 다른 업체들은 유럽에도 생산시설을 갖췄지만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대신 미국 시장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넥센타이어가 옳았다. 타이어업체들은 유럽에선 유로화 약세로 고전했고, 중국에선 미국의 반덤핑 관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대로 완전히 회복된 미국 시장에선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타이어업체도 호황을 누렸다. 한국과 미국 공장이 주력인 넥센타이어가 잘나갈 수밖에 없던 이유다.
마케팅에서도 달랐다.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는 레이싱 후원 같은 고급 마케팅에 주력한 데 반해 넥센타이어는 야구나 축구 같은 대중 마케팅에 집중했다. 넥센 히어로즈 후원이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시티 후원이 대표적 활동이다.
역발상 경영은 실적에서 빛이 났다. 2009년 9662억원이었던 넥센타이어 매출은 지난해 1조7587억원으로 5년 만에 갑절 가까이 늘었다. 1000억원도 안 되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2000억원을 넘었다. 12%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은 국내 타이어업체 중 최고다. 강 사장은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후발 주자다 보니 경쟁사보다 한 박자씩 늦게 해외에 진출하고 국내와 미국 시장에 주력한 게 오히려 좋은 성적을 낸 이유였다고 겸손해했다. 인지도를 올리려다 보니 대중 마케팅에 노력을 더 기울였다는 것이다. 강 사장은 이제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초고성능 타이어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율을 높여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타이어에서 품질이 좋은 타이어라는 이미지를 굳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호찬 사장 프로필
△1971년 부산 출생 △1990년 부산고 졸업 △1999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대유리젠트증권 입사 △2001년 넥센타이어 입사 △2003년 넥센타이어 경영기획실 상무 △2006년 넥센타이어 영업본부 부사장 △2009년 넥센타이어 영업본부 사장 △2010년 넥센타이어 전략담당 사장 △2015년 넥센타이어 영업부문 사장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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