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베트남에 차 수출하면 영세율 적용됩니다"
법원 "피해액 700억대 달해…피고인에 징역 4년 선고"
[ 김인선 기자 ]
불행의 씨앗은 가장 가까운 데 숨어 있다. 내게 그 씨앗을 전해준 사람은 고교 동창 김미선이었다.
“형자야, 너 저번에 계 탄 거 안 쓰고 갖고 있지?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데 한 번 가볼래? 아무나 투자할 수 없는 거래. 너니까 내가 알려주는 거야.”
나는 2009년 11월 친구 따라 강남에 갔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자동차중개무역업을 하는 회사였다. 사무실에 앉자 종이컵에 끈적끈적한 믹스커피를 내줬다. 회사는 북적북적했다. 작은 탁자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자료가 담긴 파일을 넘겨 보고 있었다. 내가 앉은 탁자 앞에 오 팀장이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게 뭔지 아세요? 자동차수출신고필증이에요. 저희 회사가 지금까지 베트남으로 수출한 자동차가 이렇게 많습니다.” 빼곡한 숫자가 휙휙 넘어갔다. 빨간 도장도 찍혀 있었다. “자동차 수출은 영세율을 적용받아요. 세금을 내고 차량을 구입해 이를 수출하면 영세율을 적용받아 이미 납부한 부가가치세 10%와 개별소비세 6.5% 내지 13%를 합해 최고 23%의 세금을 수출한 익월 10일에 환급받게 됩니다. 한 달에 수출을 두 번 하면 최고 46%의 세금을, 세 번 수출하면 최고 69%의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거죠.”
돈을 돌려준다고 하니 귀가 솔깃했다. 팀장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사실상 합법적으로 세금을 돌려받는 거죠. 이렇게 매월 10일에 원금의 10%나 15%를 수익금으로 지급하고, 차량을 수출해서 보장되는 원금은 2~3개월 안에 꼭 환급할 테니 걱정마세요. 요즘 베트남이 경제부흥기인 거 아시죠. 중고차가 없어서 못팔 정도라니까요.”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원금의 20%대 돈을 환급받을 수 있다니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친구 미선이는 이미 그 회사에 1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 장가갈 때 주려고 모아놓은 돈 6000만원을 회사에 입금시켰다. 몇 년만 지나면 돈이 꽤 쌓이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돈이 들어오는 10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은 끝내 오지 않았다. 대신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다단계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나 같은 피해자가 800여명이고, 피해액이 700억원을 넘는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부장판사 김동아)은 지난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심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투자를 받더라도 원금은 물론 약속한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음에도 그럴듯한 회사의 모습을 빌려 조직적으로 계속·반복적으로 범행을 감행했다”며 “그 피해는 피해자 개인은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에 파급돼 건 徨?경제활동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고자 사업의 성공 가능성, 수익 창출 구조 등에 관해 숙고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범행 발생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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