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100년 전 영국-프랑스가 그은 중동 국경선…'테러 괴물' IS 씨앗으로

입력 2015-11-22 19:05
전세계 테러 주범 'IS 탄생사'

서방의 중동 개입이 낳고
종파 고려 안한 국경 '영토 전쟁' 불러
'소련 붕괴 목적' 미국 무기는 테러조직 유입

시리아 내전이 키우다
수니-시아파 갈등 활용해 세력 확대
IS, 전쟁자금으로 최대 연 20억弗 사용


[ 이정선 기자 ] 유럽에 알파벳을 전해준 건 기원전 2000년께 등장했던 고대 국가 페니키아였다. 오늘날 시리아지역에 있었던 페니키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 크레타섬으로 전파된 알파벳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유럽의 어원 ‘에우로페(Europe)’는 페니키아 공주의 이름이기도 하다. 황소로 변장한 제우스신에게 크레타섬으로 납치된 뒤 함께 사랑을 나눈 에우로페의 흔적은 유로화에도 새겨져 있다.

유럽 문명의 뿌리였던 시리아 지역이 21세기에 또 한 번의 문명사적 충격을 던지고 있다. 시리아, 이라크 일대를 점령한 이슬람 과격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서다. 서방 인질 참수, 폭탄 테러, 인신매매 등 끔찍한 테러를 자행해온 IS는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인 테러로 130명을 살해했다. 문명의 기원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극악무도한 야만적 행태가 벌어지는 모순된 상황에 문명세계가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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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종파 간 갈등이 IS 키워

IS의 전신은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이끈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AQI)다. 2010년부터 AQI 리더로 등장한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사진)는 아랍의 봄 물결의 여파로 2011년 발생한 시리아 내전을 틈타 시리아 북동부에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전복을 시도했던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알누스라 전선을 통합하며 2013년 4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ISIS)를 결성했다.

이후 알카에다와 결별해 독자노선을 걷던 ISIL은 지난해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하면서 IS로 이름을 바꾸며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최고지도자 알바그다디는 ‘무함마드의 대리인’이란 뜻인 칼리프로 지명됐다. IS는 현재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고 있다.

IS가 세(勢)를 불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자양분이 된 건 시리아 내전이다. 4년째 무정부 상태로 남아 있는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IS는 차근차근 세력을 키웠다. IS는 이슬람지역의 해묵은 갈등인 수니-시아파 갈등을 적극 활용했다. 대다수가 수니파임에도 시아파 계열의 알아사드 정부에 핍박받았던 시리아 국민들은 IS에 쉽게 동화했다.

IS가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사담 후세인 잔당의 흡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흩어진 정규군이 대거 IS에 가담한 것이다. 정규전의 실력을 갖춘 후세인 잔당은 IS엔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였다. 시아파가 새 정부를 구성한 뒤 후세인 시절의 기득권 세력인 수니파를 홀대한 것도 후세인 잔당의 IS 가담을 부추겼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8일 “이라크 정부가 수니파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급여와 일자리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탄압에 나서면서 반란이 다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서구 열강의 원죄가 불행의 씨앗

역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당시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 지역을 차지한 뒤 맺은 ‘사이크스-피코 협정’도 IS의 등장을 잉태한 배경으로 꼽힌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밀약에 따라 종파나 민족의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을 그었다. IS는 100년 전에 그어진 국경을 허물고 수니파가 함께 거주했던 시절의 영토 회복을 대내외에 밝히고 있다. 실제 IS가 2013년 이후 이라크 공격에 나서자 다수의 수니파 거주지는 이라크에 등을 돌리고 IS 전사들에게 문을 열었다.

미국도 IS 탄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을 제거하면서 이라크 일대에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말 이라크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미군을 모두 철수해 IS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심지어 미국은 테러조직을 키웠던 암묵적 지원자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후 10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미국은 소련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아프?반군 무장조직 무자헤딘에 엄청난 탄약과 무기를 지원했고, 이는 알카에다와 IS 등 테러 조직으로 흘러들어갔다.

○테러와의 2차 전쟁…서방의 딜레마

IS는 영토를 가진 최초의 테러집단이다. 유전지대를 장악해 든든한 자금줄까지 확보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IS는 원유 밀매를 통해 하루 150만달러(약 17억4000만원), 연간 5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1인당 평균 2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인질매매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외교매체 포린폴리시는 “IS의 전쟁자금은 연간 10억~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미얀마 국방비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IS는 2만~3만명의 전사를 확보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형 전사도 약 2만8000명에 이른다. 대공포, 지대공미사일, 탱크, 장갑차 등도 다수 갖추고 있다. IS는 이탈리아 로마, 미국 워싱턴DC 등에 대한 추가 테러를 암시했다. 이른바 ‘역(逆)십자군 전쟁’을 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린폴리시는 “IS가 이슬람교의 종말론적 예언에 따라 인류 최후의 대결이라는 ‘아마겟돈’을 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방과 러시아 등은 IS 응징을 밝히고 있지만 지상군 투입은 꺼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수만명 이상의 병사를 잃었던 트라우마가 남은 탓이다. 시리아 내전의 단초를 제공했던 알아사드 정권의 존폐를 놓고도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의 속내가 엇갈리고 있다. IS를 뿌리 뽑기가 당분간 쉽지 않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