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금융실명제…'세계화' 주창하며 OECD 가입

입력 2015-11-22 18:14
"깨끗한 정치가 최고 경제정책" 내걸었던 YS

부동산실명제·공직자 재산공개로 부패 척결
수출 1천억달러·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열어
고비용·저효율 못고쳐 임기말 외환위기 '오점'


[ 정종태 기자 ]
1993년 8월12일 오후 7시. 예정에 없던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시각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實名)으로만 이뤄진다”며 금융실명제 도입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공포했다. 금융실명제는 경제는 물론 한국 사회의 관행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파장이 큰 정책이었다. 그런 만큼 도입 과정도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등의 담당 공무원 10여명이 과천 시내 한 아파트에서 두 달간 합숙하며 비밀리에 작업했다.

김영삼 정부 초대 경제수석으로 김 전 대통령의 ‘경제 교사’였던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조차 추진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박 전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처럼 토론에 부쳤다면 실패할 게 뻔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전광석화처럼 해치워버렸던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아니었다면 도입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렇게 전격 시행된 금융실명제는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대 경제공적으로 평가된다.

○과거와 단절한 ‘YS노믹스’

김 전 대통령의 취임 직전 연도인 1992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5.8%였다. 1980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30년 넘게 유지해온 낡은 제도와 관행의 부작용이 가시화한 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제 체질이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바뀐 데 따른 후유증이란 분석이 많았다. ‘문민정부’ 기치를 내걸고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군사정부와 단절하듯 경제도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맨 먼저 단행한 게 개발연대 경제정책의 뼈대였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폐기였다. 대신 ‘신(新)경제’란 이름으로 경기부양 100일 계획과 공기업 민영화,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투명성 높인 혁신적 대통령”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YS노믹스’의 상징으로 통한다. 김영삼 정부 두 번째 경제팀을 이끌었던 홍재형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금융실명제는 물론 부동산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시행하면서 부패를 차단하고 과세 형평성을 높이려 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혁신가적 자질을 가진 분이었다”고 평했다.

박 전 장관도 “흔히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이 姸┫?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깨끗한 정치가 최고의 경제정책’이란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라며 “정치가 바로서야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위기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11월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들른 호주 시드니의 한 호텔에서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금융자율화, 외환자유화, 자본시장 개방 정책 등을 밀어붙였다. 1996년 말에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OECD 가입은 한국 경제 체질을 선진화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치밀한 준비 없이 자본시장 문호를 연 데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몰려드는 외자로 원화가치는 급등했고, 수출 부진에다 해외여행 자유화까지 겹쳐 경상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단기외채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권 중반기를 지나면서도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 체질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급기야 국가부도 위기로까지 치닫는 결과를 낳았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수장을 맡았던 임창열 전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은 우리 경제 체질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개혁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분이었다”며 “외환위기 하나만으로 김영삼 정부 전체를 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김 전 대통령이 영면한 22일은 18년 전인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에 대한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