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원의 화양연화] 메멘토 모리…반갑지 않은 사진

입력 2015-11-18 10:15
뉴스래빗의 감성 영상기록 [화양연화] 4회

영정사진을 찍어 드립니다


[편집자 주] 세상 모든 것에는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 누구든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기에 화양연화는 가장 값진 기억, 가장 그리운 시절로 빛납니다. '신세원의 화양연화'는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쓸려 사라지고 잊혀지는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의 '화양연화'를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신세원의 화양연화] 영정사진을 찍어 드립니다


# <카드뉴스>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래빗'은 지난 23년 간 영정사진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어르신 약 9600여 명에게 무료 사진 봉사를 해온 천안효도사진봉사회 류영근(71)씨를 최근 천안에서 인터뷰했습니다. 아래는 류씨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여기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철 지난 넥타이, 때깔 고운 한복으로 잔뜩 멋을 낸 경로당 어르신들.

"저번에 찍은 영정사진 좀 빨리 주세요."

다급히 걸려온 전화는 새벽 녁 부고(訃告)였습니다.

"만난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놀란 마음 붙잡고 도착한 장례식장, 내가 찍은 영정사진을 마주하며 절하는 느낌이란.

"나도 저 때 되면 똑같겠구나. 인생 참 덧없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산소 호스로 숨을 쉬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불현 듯 예전 일이 생각났다. 보리밥도 못 먹던 그 시절, 사진을 업(業)으로 택했던 23년 전 그 때.

회갑연 촬영 때면 돌아가신 두 분 생각이 절로 났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나신 우리 부모님. 정말 보고 싶어서, 그게 한(恨)이 됐다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야속했다.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시작한 영정사진 촬영.

정작 사진이 완성되도 어르신들은 바로 찾지 않는다. 집 근처 슈퍼에 맡겨 놓으라는 말만 남긴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다.

"이거 찾아가면 얼마 못 가 죽을 것 같아."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23년째 무료 봉사. 나도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 몰랐다. 이젠 나도 일흔이 넘은 나이. 내 몸 성한 곳도 별로 없다.

젊은 날에는 "봉사란 자랑할 필요 없이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나름 잘 살았다, 행복했다, 이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딸이 내게 말했다.

“아빠는 봉사에만 관심 있지. 우리한테 신경 써 준 적 있어요?”

주위에선 경로효친사상 전파자, 가족에겐 무관심한 아버지.

70살이 넘은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

이젠 '영정 사진'을 '효도 사진'이라고 부른다. 여기 오시는 어르신은 독거노인이거나 영세민들이다. "아직 죽을 때도 아닌데 무슨 영정사진이냐"며 냉담하던 어르신들이 이제 너도나도 찍으려한다.

"곧 죽는다"며 표정이 굳은 할머니에게 농을 던져본다.

"할아버지는 어디 갔어?"

"죽고 나 혼자야. 경로당엔 근데 쓸 놈이 없구먼."

"허허, 하하하"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알면 순간은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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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김민성 기자, 연구 =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tpdnjs0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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