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금융사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필요한가

입력 2015-11-13 18:18
[ 이태명 기자 ]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이 금융개혁의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은 성과와 관계없이 근속 연수만 채우면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를 성과연동형 임금체계로 바꾸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앞으로 남은 주요 금융개혁 과제는 금융권의 성과주의 문화 확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은행 현장에선 ‘영업현장 실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은행권 임금체계를 성과주의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쪽에선 ‘일을 못하는 은행원도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다수 은행들이 호봉제 형태의 임금체계를 도입 중인데, 그렇다 보니 업무 성과에 따른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과급 지급방식도 개인별 성과가 아닌 지점 등 집단 성과에 따라 주고 있어, 저성과자를 솎아내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이 때문에 은행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평균 연봉(남자직원 기준)은 1억원을 넘는 저효율·고임금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은행 현장에선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하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선 영업점 업무의 대부분이 팀 단위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개인별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개?성과를 토대로 성과급을 줄 경우 지점 내 과도한 실적 경쟁으로 소비자 피해만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부가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을 압박하는 데 대한 불만도 크다. 민간 기업인 은행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임금체계를 정부가 바꾸라는 건 관치(官治) 아니냐는 지적이다.

찬성 / 低효율·高임금 구조 고착화되면 세계 시장서 한국 금융산업 뒤처져

자산설계 등 전문 인력엔 보수 더 줘야

현 정부 들어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편의 핵심은 단연 임금체계 개편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 평균수명 증가, 인구구조 고령화와 맞물려 현재의 임금체계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위기의식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실제 임금체계 개편은 지지부진하다. 남들이 변화하는 건 괜찮지만 자신과 관련된 변화는 싫고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 등 금융산업도 마찬가지다. 금융산업 노동시장의 특성을 살펴보자. 먼저 금융산업에서 연공급 임금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94%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치다. 임금수준은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 40%가량 높다. 여기에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 비중도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높은 연공급 임금체계 도입으로 근속 연수도 상당히 길다.

종합해보자면 급여수준이 높고 근속 연수가 긴 상황에서 연공급 임금체계에 저조한 수익성까?더해져 있는 게 금융산업 노동시장 구조다. 이처럼 생산성과 연동되지 않는 고임금 구조를 감당하기 위해선 정규직 근로자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게 은행 등 금융산업이 처한 상황이다.

금융산업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고민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됐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업무성과와 관계없이 50대의 중·고령에 도달하면 무조건 퇴직을 권고받는 일이 반복된다.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다른 산업으로 전직하는 비중도 매우 저조하다. 금융산업 종사자의 고학력 비율이 다른 산업에 비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고령층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커다란 사회적 손실이라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의 이런 비효율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임금체계 개편이다. 중·고령층이라도 업무성과가 우수하다면 보다 긴 기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노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금융산업 임금체계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직무가 뚜렷하게 구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영업점의 단순 업무를 보는 인력과 상품 판매, 프라이빗뱅킹(PB) 관리 등을 담당하는 업무 인력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문지식이 없는 직원이 금융상품 판매와 자산설계를 하는 건 소비자 위험을 가중시키고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은행처럼 단순업무 인력은 임금상승률을 낮추는 대신 안정성을 부여하고, 渙?管쩜?성과 중심으로 평가하는 두 갈래(two track) 임금체계를 고려해 봐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금융산업의 임금체계는 많은 임금을 적은 시간에 받고 일찍 퇴직하는 구조로 단거리 선수에 비유할 수 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장거리 선수 즉, 임금수준이 조금 낮더라도 노동시장에서 길게 일할 수 있는 체질로 전환하는 것인데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거리 종목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계속 단거리만 고집한다면 결국 그 선수가 설 무대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그때 후회하면 이미 늦다.

반대 / 직원 간 과도한 실적경쟁으로 불완전판매 등 고객 피해 늘 것

은행 업무는 협업체계…객관적 기준 마련 곤란

정부 금융개혁의 초점이 은행권 임금체계로 향하고 있다. 은행의 보신주의를 지적한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직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은행 영업시간, 은행원 고액연봉을 언급했다. 금융당국도 이른바 성과주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게 금융개혁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 압박은 은행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일 뿐만 아니라 금융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저(低)성과자, 고(高)연령자 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란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첫째,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건 은행 영업현장의 실정과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공정한 평가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하지만 은행권 업무 특성상 직무분석·평가를 위한 객관적 기준 마련이 곤란하다. 은행 업무가 개인 위주가 아닌 팀 단위의 협업체계라는 점 때문이다. 영업점 현장을 한 번 살펴보자. 공과금 수납, 단순 입출금, 자동화기기 관리, 동전 교환, 서무 업무 등 계량화하기 힘들고 협업을 통해서만 가능한 업무들이 대부분이다. 실적 위주의 개인별 성과평가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현장의 팀워크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

둘째, 금융당국은 직무성과급제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하지만 직무성과급제는 노동시장이 횡단적 구조일 때 성공할 수 있는 제도다. 은행권은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 2금융권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과 건전성이 요구되기에 노동시장도 종단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A보험사 대리가 막대한 수익을 내는 상품을 개발하면 B보험사로부터 과장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C은행 대리가 부동산 담보대출 업무를 잘한다고 해서 D은행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은행권에서 직무성과급 도입이 어려운 이유다.


셋째,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은 단기성과주의의 폐단과 과당경쟁의 문제점을 극대화시킨다. 금융산업은 대표적 규제 산업이다. 은행은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이지만 동시에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공공성도 요구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해치고 수익성을 악화시켜 은행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장의 여신업무가 실적 중심으로 이뤄진摸?공격적인 대출 운용으로 연체와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또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어 펀드, 방카슈랑스 등의 불완전 판매도 늘어날 것이다. 금융회사의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난무할 것이고 이는 결국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임금체계는 은행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국민은 정부에 민간 기업의 임금체계에 개입할 권리를 위임한 적이 없다.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현재 근속 연수에 따른 연공주의식 호봉제와 조직 내 저성과자에 대한 문제점은 각 은행 노사도 충분히 고민하고 있으며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산업에 비해 호봉제 비율이 높다고 성과급제 도입을 압박하는 건 관치금융의 또 다른 전형이다. 정부 입맛대로 은행 임금체계를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심각한 월권행위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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