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차관급 회의기구 만들고도 결론은 "은행이 알아서 하라"
산업 살리겠다는 전략 없이 구조조정 보고서만 만들어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 좌동욱 기자 ]
“보고서로 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997년 외환위기 전후 대기업 구조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공직자가 지난 10일 금융위원회 브리핑을 보고 내놓은 평이다. 당시 금융위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통해 “조선 건설 철강 해운 석유화학에 대한 업종별 업황보고서를 연내 작성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정부 주도의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설’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금융위도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재편’을 위해 차관급 회의 기구까지 신설한 정부의 결론이 “기업과 채권은행의 자율적인 협의”(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뿐이라면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이 별 효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은 정부 실무자들도 인정하는 터다.
민간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사 체제 유지가 필요하다”는 해양수산부의 공식 발표다. 양사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부 지원책 등 세부 조건은 전혀 따져보지 않고 해당 부처의 입장만 밝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종별 업황보고서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종용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후딱 만들어 넘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글로벌 기업 경쟁이 가열되고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책임을 뒤집어 쓴 산업은행은 향후 논란이 벌어지지 않을 대안들만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창의적 발상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좀비 기업’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중단하고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접근법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처럼 기업과 은행에 ‘훈수’만 두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관전자(정부)의 태도로는 살아움직이는 기업의 디테일(세부 내용)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
무작정 기업을 살리고 해당 기업인들을 보호해주라는 것이 아니다. 산업 전체가 죽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구조조정의 최종 목표도 산업을 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청와대도 공무원과 국책은행이 향후 정권교체에 따른 책임 추궁, 감사 坪?정책감사 등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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